감악산

P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소리를 냈어. '으어' 하는, 딱 그 아저씨 소리. 욕탕에 들어갈 때 나도 모르게 나는 그런 소리 말이야. 의자에서 일어설 때 나오는 '끄응'보다는 살짝 다른 종류의 소리. P는 사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안 좋아해. 심지어 정상석도 본 척 만 척. 억지로 찍은 사진은 마치 핸드폰을 잘못 조작하다 찍힌 것처럼 구도가 엉망이야. 그나마 얼굴이라도 나오면 다행이지. ​이제 곧 장마철인데, 마치 폭풍 전야처럼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 오늘도 햇빛은 쨍쨍. 여름 초입이라지만 벌써 양달은 너무 뜨거워서 슬쩍 피하게 되네. 감악산은 3년 전에 한 번 오른 적 있어. 지도가 헷갈려서 하산을 두 번이나 했던 기억이 나. 그래서 이번엔 복습과 예습을 철저히 했지. 덕분에 오늘은 깔끔하게 산행 완료. ​이마트24 에서 삼각김밥 하나 먹고 산행 시작. 오늘은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꽤 많네. 출렁다리 여기저기서 쏼라쏼라. 범륜사를 지나 운계전망대부터는 사람이 뜸해졌어. 파주 쪽 감악산 둘레길인 ‘손마중길’을 걷다가, 운계능선길 이정표에서 정상 방향으로 우회전. 거기서부터 정상까지는 2.3킬로미터. 완만한 오르막길. 내내 숲길을 걷다가 까치봉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조망이 트이더라. 암봉과 오솔길로 이어진 정상부의 모습, 그리고 강우레이더까지. 관악산 자운암 능선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어. 뒤따라오던 P의 '으어' 소리가 멎고, 정상에 도착. ​정상에서는 임진강이 바로 보였고, 멀리 개성의 송악산도 희미하게 보이더라. 예전에 봤던 개성 시내는 미세먼지에 가려져 잘 안 보였고. 어느 산이든 정상에는 사람이 모이기 마련인데, 여긴 좀 한가하네. 저녁에 비 예보가 있어서일까. 인증용 사진만 대충 찍고, 임꺽정봉 방면으로 하산. ​정상부 남쪽, 그러니까 양주 관할 구역엔 임꺽정봉을 비롯해 장군봉, 악귀봉, 범바위처럼 볼거리가 많아. 바위를 타고 내려가는 잔도도 있어서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지. 데크 방향이 바뀌는 지점마다 전망대가 잘 마련돼 있어서, 이런 암릉군의 절경을 여유 있게 감상할 수도 있고. 예전엔 길을 잘 몰라 이 근방에서 다시 임꺽정봉으로 올라 하산했는데, 오늘은 예습한 대로 양주 쪽 감악산 둘레길인 '임꺽정길'과 만나는 지점까지 곧장 직진했어. ​'임꺽정길'에서 '청산계곡길'의 시작점인 부도골 쉼터까지는 1.2킬로미터. 산행 내내 사람을 많이 보지 못하긴 했지만, 이 둘레길에서는 정말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어. 심지어 길의 흔적조차 희미했지. 평소 왕래가 거의 없는 구간이라 낙엽이 두껍게 쌓여 있었고, 나뭇가지도 울창해서 원시림 분위기마저 풍기더라고. 혼자라면 꽤 무서울 수도 있었을 것 같아. 부도골 쉼터에서 '청산계곡길' 끝인 범륜사 입구까지의 마지막 구간(2.3킬로미터)에서도 사람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임꺽정길'보다는 길이 넓고 자국도 뚜렷해서 한결 마음 편히 걸을 수 있었어. 아침에 지나쳤던 출렁다리를 다시 건너 주차장으로 원점 회귀하며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했지. ​지금 다시 '으어'를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나. 아저씨니까 아저씨 소리를 내는 거지. 그리고, 투박한 사진이라도 찍어주는 게 어디야. 무엇보다도, 그런 무서운 길을 함께 걸었다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 아닐까. 조만간 또 한 번, 그 ‘으어’를 들으러 가자고.

Hiking/Backpacking

Paju-si, Gyeonggi, South Korea
Gastong photo
time : Jun 15, 2025 9:20 AM
duration : 5h 30m 40s
distance : 9.6 km
total_ascent : 667 m
highest_point : 668 m
avg_speed : 2.2 km/h
user_id : Gastong
user_firstname : 김학선
user_lastname :
P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소리를 냈어. '으어' 하는, 딱 그 아저씨 소리. 욕탕에 들어갈 때 나도 모르게 나는 그런 소리 말이야. 의자에서 일어설 때 나오는 '끄응'보다는 살짝 다른 종류의 소리. P는 사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안 좋아해. 심지어 정상석도 본 척 만 척. 억지로 찍은 사진은 마치 핸드폰을 잘못 조작하다 찍힌 것처럼 구도가 엉망이야. 그나마 얼굴이라도 나오면 다행이지. ​이제 곧 장마철인데, 마치 폭풍 전야처럼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 오늘도 햇빛은 쨍쨍. 여름 초입이라지만 벌써 양달은 너무 뜨거워서 슬쩍 피하게 되네. 감악산은 3년 전에 한 번 오른 적 있어. 지도가 헷갈려서 하산을 두 번이나 했던 기억이 나. 그래서 이번엔 복습과 예습을 철저히 했지. 덕분에 오늘은 깔끔하게 산행 완료. ​이마트24 에서 삼각김밥 하나 먹고 산행 시작. 오늘은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꽤 많네. 출렁다리 여기저기서 쏼라쏼라. 범륜사를 지나 운계전망대부터는 사람이 뜸해졌어. 파주 쪽 감악산 둘레길인 ‘손마중길’을 걷다가, 운계능선길 이정표에서 정상 방향으로 우회전. 거기서부터 정상까지는 2.3킬로미터. 완만한 오르막길. 내내 숲길을 걷다가 까치봉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조망이 트이더라. 암봉과 오솔길로 이어진 정상부의 모습, 그리고 강우레이더까지. 관악산 자운암 능선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어. 뒤따라오던 P의 '으어' 소리가 멎고, 정상에 도착. ​정상에서는 임진강이 바로 보였고, 멀리 개성의 송악산도 희미하게 보이더라. 예전에 봤던 개성 시내는 미세먼지에 가려져 잘 안 보였고. 어느 산이든 정상에는 사람이 모이기 마련인데, 여긴 좀 한가하네. 저녁에 비 예보가 있어서일까. 인증용 사진만 대충 찍고, 임꺽정봉 방면으로 하산. ​정상부 남쪽, 그러니까 양주 관할 구역엔 임꺽정봉을 비롯해 장군봉, 악귀봉, 범바위처럼 볼거리가 많아. 바위를 타고 내려가는 잔도도 있어서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지. 데크 방향이 바뀌는 지점마다 전망대가 잘 마련돼 있어서, 이런 암릉군의 절경을 여유 있게 감상할 수도 있고. 예전엔 길을 잘 몰라 이 근방에서 다시 임꺽정봉으로 올라 하산했는데, 오늘은 예습한 대로 양주 쪽 감악산 둘레길인 '임꺽정길'과 만나는 지점까지 곧장 직진했어. ​'임꺽정길'에서 '청산계곡길'의 시작점인 부도골 쉼터까지는 1.2킬로미터. 산행 내내 사람을 많이 보지 못하긴 했지만, 이 둘레길에서는 정말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어. 심지어 길의 흔적조차 희미했지. 평소 왕래가 거의 없는 구간이라 낙엽이 두껍게 쌓여 있었고, 나뭇가지도 울창해서 원시림 분위기마저 풍기더라고. 혼자라면 꽤 무서울 수도 있었을 것 같아. 부도골 쉼터에서 '청산계곡길' 끝인 범륜사 입구까지의 마지막 구간(2.3킬로미터)에서도 사람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임꺽정길'보다는 길이 넓고 자국도 뚜렷해서 한결 마음 편히 걸을 수 있었어. 아침에 지나쳤던 출렁다리를 다시 건너 주차장으로 원점 회귀하며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했지. ​지금 다시 '으어'를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나. 아저씨니까 아저씨 소리를 내는 거지. 그리고, 투박한 사진이라도 찍어주는 게 어디야. 무엇보다도, 그런 무서운 길을 함께 걸었다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 아닐까. 조만간 또 한 번, 그 ‘으어’를 들으러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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