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outh Korea
time : Jul 20, 2025 7:10 PM
duration : 1h 46m 31s
distance : 8.4 km
total_ascent : 45 m
highest_point : 46 m
avg_speed : 4.8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하루 종일 햇볕이 뜨거워서 밖에 나가지 않고 있다가 해가 질 무렵인 오후 7시 좀 지나서 산책을 나갔다. 해가 지고 나니 좀 걸을 만했다. 걸으면서 세조와 단종과 관련된 동영상을 들었다. 지금 읽고 있는 매월당 김시습과 연관되어 있어서 더 관심이 가는 영상이었다.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만일 그 당시 세조가 반정을 일으키지 않고 단종을 보필하였다면 우리나라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헛된 상상을 해보았다. 세조도 나름 반정을 일으켜야 했던 이유도 있었을 테지만 사실 그 반정을 하는데 너무 많은 힘을 쏟았고, 그로 인해 정권을 잡은 뒤에 제대로 된 정사를 펼치는데 뒷심이 부족했던 것 같다. 더구나 그 일로 인해 조선의 후반기까지 학자들은 각자 당파를 만들어 서로 공을 세우려고 다른 당을 헐뜯고 모함하는 일에 몰두했으니 이 모든 것이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란에서 그 원인(遠因)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계유정란으로 우리가 기회를 잃었던 것 중에 하나는 한글 보급이 늦어진 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것이 1446년 10월 9일이었고 계유정란이 일어난 것은 1453년11월 10일이다. 계유정란으로 인해 성삼문 등 수많은 학자들이 살해당했고, 또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학자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초야에 묻혀 지냈다. 결국 한글은 반포되었으나 그 이후 대중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역사적으로 나쁘게만 평가를 받는 세조의 계유반정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 만일 그 때 역사가 순리대로 진행되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가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물론 근대사에서 12.12 쿠데타나 12.3 내란의 영향력을 반추해 보면서.
팔당 댐 수문을 열었는지 서울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한강 물이 부쩍 불었다. 올림픽 대교와 천호대교의 교각 아래 둥근 받침이 물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