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su-gun, Jeonbuk State, South Korea
time : Jun 6, 2025 2:58 AM
duration : 13h 32m 8s
distance : 30.8 km
total_ascent : 2375 m
highest_point : 1602 m
avg_speed : 2.4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현충일 덕분에 하루 더 늘어난 주말이다. 이렇게 하루가 더 생겨난 것 같지만 마음만 풍성할 뿐,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똑 같은 일상이 이어지는 날에 불과하다. 문득 덕유산이 떠올랐다. 덕유 평전의 철쭉은 지금 피었을까? 돌이켜보니 육구종주를 걸었던 게 벌써 1년 전이다. 지금 내 체력으로 다시 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안될 이유도 없어 보였다. 그동안 주말마다 산행을 해 왔지만, 그리고 산에 오를 때마다 힘이 든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최근 설악산 무박 산행을 했듯이, 육구 중주를 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육구종주는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에 있는 육십령(六十嶺)에서 출발하여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구천동까지 이어지는 약 32 km를 걷는 긴 여정이다. 그 32 km의 여정 중에서 마지막 구천동 계곡 코스인 백련사에서 구천동까지 7 km 구간이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이고 나머지 전 구간은 돌과 흙과 나무 계단으로 이어지는 산악 탐방로이다. 그 여정을 살펴보자면;
육십령 – 남덕유산 : 할미봉과 서봉을 거쳐 8 km 의 꾸준한 오르막길
남덕유 – 삿갓재 : 삿갓봉을 넘어야 하는 4.5 km 의 오름길
삿갓재 – 향적봉 : 무룡산, 동엽령, 가림봉, 백암봉 – 중봉으로 이어지는 10.5 km 꾸준한 오르막길
향적봉 – 백련사 : 2.5 km 의 급경사 내리막길
백련사 – 구천동 : 무주 구천동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6.1 km 의 편안한 길
혼자서 갑자기 결정한 덕유산 산행에서 육구종주를 할지 아니면 이보다 좀 짧은 영구종주(영각사~구천동 26 km)를 뛸 지 조금 망설였다. 그리고 마침내 버스가 육십령에 도착하자 나는 마음을 정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마치 누군가 내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육십령(六十嶺 해발 734 미터)
경상남도 함양군과 전라북도 장수군 사이에 있는 고개인데 옛날 도적(盜賊)과 산짐승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이 고개를 넘으려면 60명의 인원이 찰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먹고 살기 힘들어 도적이 된 사람들이 이 고갯마루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삥을 뜯었던 모양이다.
새벽 3시 육십령 휴게소에는 방금 산악회 버스에서 내린 10여명의 산꾼들이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한 채 산행 채비를 하고 있다. 오늘은 날이 맑을 것이라고 예보하였으나 하늘에는 구름이 낀 듯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헤드랜턴 불빛에 안개가 흩날리는 것이 보인다. 기온은 서늘하다.
배낭에는 어제 개업한 식당에서 준 시루떡 두 팩과 바나나 네 개와 토마토 그리고 단팥빵 두 개가 들어 있다. 물은 1.5 리터 짜리 큰 걸로 한 병을 넣었다. 중간에 물이 떨어지면 삿갓재 대피소에서 보충할 수 있다.
산길은 적막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발 빠른 산꾼들은 이미 멀리 달아나 버렸고 느린 사람들 예닐곱 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행이 되었다. 불빛에 비친 산길 뿐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할미봉(1,026 미터)을 넘고 서봉(1,492 미터)으로 오른다. 멀리서 소쩍새가 운다. 이 새가 우는 것은 다른 새와 마찬가지로 제 짝을 부르는 ‘사랑의 노래’일 텐데 왜 사람들은 새가 운다고 표현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가 밤에 산길을 아무런 두려움 없이 걸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사람을 해치는 맹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기한 일이다. 이 육십령만 하더라도 호랑이 등 맹수가 무서워서 여러사람들이 함께 넘어야 했다는데, 그 무서운 짐승들이 이렇게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도 원숭이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원숭이들을 호랑이가 다 잡아먹었고, 원숭이가 없어지자 호랑이는 원숭이를 닮은 사람을 잡아먹었다. 사람과 호랑이의 싸움이 생겨났고, 무기를 이용한 사람들이 승리했다. 더구나 대륙에 살고 있는 맹수들은 한반도를 허리띠처럼 두르고 있는 휴전선이 막고 있어서 더 이상 내려올 수도 없게 되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이처럼 깜깜한 밤에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산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서봉이 가까워졌을 때 여명이 밝아온다. 이제 소쩍새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재잘대는 휘파람새 소리가 명랑하게 들린다. 이 새들은 오늘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니며 휘파람을 불어 주었다. 이제 산이 보이고 꽃이 보인다.
남덕유산 (南德裕山 1,507 미터)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해 없는 일출을 맞았다. 그렇게 날이 밝으니 사방이 잘 보인다. 서봉에서 바라보는 덕유산 주능선의 모습은 장관이다. 이미 겨울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온 산이 푸르른 여름 빛이다. 산 아래 숲에는 층층나무 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
서봉에서 남덕유산으로 가는 1.1 km 구간 산길은 봉우리 중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는 힘든 코스다. 남덕유로 오르는 길에 우회하는 길이 있지만 오늘도 정공법을 쓴다. 갈림길에서 300 미터 거리의 남덕유로 곧장 오른다. 이 남덕유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덕유산 산행의 진미(珍味)라고 할 수 있다. 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덕유산의 주능선이 뚜렷이 보인다. 앞으로 가야 할 길, 삿갓봉(1,418.6 미터)이 높이 솟아 있고 그 뒤에 무룡산(1,491.9 미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삿갓봉 (1,418.6 미터)
남덕유산에서 내려와 이른 아침을 먹고 월성(月城)재로 내려간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와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여기서 황점마을로 하산할 수 있고 그 반대쪽 양악호로 하산할 수 있다. 1970년대까지 이 고개를 넘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지만 마을을 잇는 교통이 발달하면서 이 고개는 산꾼들만 드물게 찾는 옛 고개가 되었다.
월성재에서 삿갓봉으로 오르는 길은 2.2 킬로미터의 산길은 고난의 길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다리에 힘이 많이 빠진 데다 삿갓봉 정상에 이르는 구간에 작은 봉우리를 여러 개 오르내리며 계속 급격한 오르막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앞에 나타난 봉우리가 그 정상인가 싶어 다가가면 산길은 그 봉우리 좌측으로 돌아서 오르고 그 앞에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나곤 한다.
겨울에는 음지라서 항상 눈이 엄청나게 쌓여 있고 나무에는 상고대가 덕지덕지 피어 있는 구간이다. 지금은 짙은 나무 숲에 초록빛이 가득하다. 물참대꽃이 하얗게 피어 있고, 가끔 분홍빛 큰앵초꽃을 보며 산꾼들은 숨을 고른다. 나무 계단과 돌계단이 번갈아 나타나고 땅 위에 튀어나온 나무 뿌리를 잡으며 오른다.
그렇게 1 시간 정도를 걸어서 삿갓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갈림길에서 삿갓봉까지 300 미터는 경사가 가파르다. 남은 힘을 다 쏟아 다리에 부어 그 마지막 300 미터를 오른다. 그리고 삿갓봉 정상에서 펼쳐지는 시원한 조망은 여기까지 오르는데 수고한 데 대해 분에 넘치게 보상해준다. 남쪽으로는 남덕유산과 서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 그 너머로 안개에 싸인 높은 산들이 너울거린다. 그리고 더 멀리 구름 위에 동서로 길게 이어진 것은 산인지 구름인지 뚜렷하지 않지만 그게 지리산 능선이다. 날이 맑으면 지리산 능선을 좀 더 뚜렷하게 볼 수 있을 테지만 더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산이 보여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동북쪽에 희미하게 비치는 산들은 김천의 수도산과 그 오른편에 가야산이 보인다. 모든 산들이 파란색으로 희미한 안개 위에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https://cafe.daum.net/mt1234/2vO0/4420?q=덕유산+조망&re=1
북쪽으로 오늘 내가 가야 할 덕유산 주능선이 마치 용의 등허리처럼 꿈틀거린다. 춤을 추는 용이라는 뜻의 무룡산(舞龍山)과 그 너머로 백암봉 그리고 중봉과 향적봉이 차례로 이어진다. 오전 9시가 넘었다. 저 향적봉 정상에 오후 3시 이전에 도착해야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