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ngyang-gun, Gangwon State, South Korea
time : May 25, 2025 2:55 AM
duration : 13h 27m 25s
distance : 19.8 km
total_ascent : 2171 m
highest_point : 1730 m
avg_speed : 1.7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코 스 : 오색 (남설악 탐방안내소) – 대청봉 – 희운각 대피소 – 공룡능선 – 비선대 – 설악동
교. 통 : 산악회 버스 이용
금요일에 비가 내리면서 상승세에 있던 더위를 가라앉히더니 토요일 종일 낮게 깔려 있던 구름이 오후에는 조금씩 벗겨지면서 그 구름 너머에 있는 파란 하늘을 조금씩 비쳐준다. 저녁에는 아직 남아 있는 구름이 햇빛에 반사되면서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비추었다.
자정(子正)에 복정역에서 버스를 탔다. 저녁에 한 시간 정도 잠을 잤는데도 차에 타자마자 유튜브를 들으면서 금방 잠이 들었나 보다. 중간에 휴게소에 잠시 들렀지만 깨지 않고 차가 한계령에 가까워졌을 때 비로소 졸린 눈을 떴다. 산행 들머리인 오색에 2시 55분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니 방금 탐방안내소 문을 열었는지 사람들이 앞다퉈 안으로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설악문을 연 지 열흘쯤 되었으니 왠만한 사람들은 이미 한번쯤 다녀갔을 텐데 아직 그 열기가 식지 않았나 보다. 일요일인데도 산꾼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가파른 등로를 오르다 지치면 길 가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고, 아직 힘이 남은 사람들은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계속 오른다. 입구에서 1 km 떨어진 제1쉼터까지는 그렇게 긴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숨을 고르면서 하늘을 본다. 나무가지 사이로 별들이 나타난다. 버스에서 산대장이 고지한 오늘의 날씨는 맑음이다. 대청봉 정상에는 기온이 영상 6도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후 3시 넘어서 비 예보가 있다고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 시간이면 거의 다 하산을 할 시간이고 비가 내린다고 해도 그 양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계속 급한 경사를 걸었더니 옷에 땀이 배인다. 그러다가 잠시 쉬고 나니 몸이 식는다. 이럴 때는 쉬지 않고 계속 걷는 것이 좋다. 이 코스는 원래 특별한 풍경도 없을 뿐더러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설악폭포를 지날 때 우렁찬 물소리가 눈 대신 귀를 자극한다. 설악폭포를 지나고 마지막 철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오르막의 시작이다. 오색에서 대청봉까지 총 5 km 거리 중 반을 넘겼다.
헤드랜턴의 긴 행렬이 조금 뜸해졌지만 여전히 내 뒤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라온다. 나무계단과 돌계단이 번갈아 나타난다. 제2쉼터 조금 못 미쳐 동쪽 하늘에 약한 붉은색 기운이 서려온다. 맑은 겨울날 나타나는 그 강렬한 아침 해돋이를 일으키기에는 힘이 조금 딸리는지 그렇게 약한 노을이 지더니 금방 사그러들고 아침이 뿌옇게 밝아온다.
여름에 만난 겨울
날이 밝으니 꽃이 보인다. 철쭉꽃이 만발했다. 산의 높이에 따라 개화상태가 다르다. 제2쉼터 부근에는 많이 피어 있지만 그 위쪽은 아직 꽃봉오리가 맺혀 있다. 그리고 정상이 가까워지자 털진달래 꽃이 보인다.
바람이 불어온다. 긴팔 셔츠 위에 좀 두꺼운 바람막이 옷을 입었는데도 찬 기운이 몸 속을 파고든다. 길가 경계목에 햇빛이 반사되어 있는 모습이 성에가 낀 것 같은 느낌이다. 버드나무와 진달래 등 나무나 꽃에는 밤새 맺혀 있던 이슬이 영롱하게 빛난다. 땅 위에는 노랑제비꽃이 꽃봉오리를 움츠린 채 떨고 있다. 겨울과 봄이 힘겨운 줄다리기 싸움을 하는 곳이다.
대청봉 정상에는 정상석 인증을 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리고 사방으로 청명한 조망이 펼쳐진다. 남설악의 가리봉과 점봉산 사이에는 운해가 넓게 펼쳐져 있다. 북쪽에는 공룡능선이 초록빛 새 옷으로 갈아입고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고 더 멀리 향로봉과 그 너머 금강산이 희미하게 비친다.
설악산은 금강산을 닮았다 하지만 현재 금강산을 갈 수 없으니 설악산을 보면서 금강산을 생각한다. 갈 수 없는 것, 그래서 볼 수 없는 것을 마냥 그리워만 하느니 이렇게 갈 수 있는 설악산을 자주 찾아가는 것이 천 배 만 배 나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러다 언젠가 남북이 서로 소통하는 날이 느닷없이 찾아오면 그 때 금강산을 찾아가리라. 남과 북이 분단된 지도 벌써 75년이 지났다. 그렇게 단절된 시간이 길면 길수록 통일의 시간은 점점 멀어질 텐데, 왜 위정자들은 통일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지 않는 걸까? 전쟁을 치루지 않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 보면 어느 새 통일이 될 것 같은데,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노력을 게을리하는 걸까?
나는 길을 걸으면서 조지 오웰(George Owell)의 소설 ‘동물농장’을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제국주의가 무너지고 러시아 혁명에 이어 공산화 독재 정권이 이어지는 모습을 동물농장에 빗대서 쓴 소설이라고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꼭 북한의 공산 정권을 묘사해 놓은 것도 같고 또 어찌 보면 남한의 위정자들의 모습도 얼핏 떠오른다.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대청봉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서둘러 중청으로 내려간다. 손이 곱아서 손가락이 뻣뻣해 진다. 대청봉 사면에는 털진달래가 피기 시작했다. 계절마다 다른 꽃이 만발하는 대청봉을 뒤로 하고 한계령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 보았다. 고산 식물인 ‘이노리나무’의 형편이 어떤지 궁금해서 찾아가 보니 아직 꽃봉오리조차 올리지 못했다. 적어도 2주는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다시 중청봉을 돌아가며 ‘배암나무’를 찾아보니 꽃봉오리만 많이 맺어 있고 아직 꽃은 피지 않았다. 그리고 중청봉을 지나 소청으로 내려가는 길에 홍월귤 꽃도 찾아보았다. 진달래과에 속하는 홍월귤은 해마다 꽃은 피우지만 열매는 맺지 못하는 것 같다.
이노리나무, 배암나무 그리고 홍월귤은 모두 빙하시대에 번성했던 나무들이라고 한다. 빙하기가 끝나고 날이 따뜻해 지자 낮은 곳에서는 적응하지 못한 채 모두 사라지고 이처럼 높은 곳에서나 간신히 그 생명을 이어가는 멸종위기 보호종 나무들이다.
공룡능선에 핀 산솜다리
쉬엄쉬엄 소청봉을 내려와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하니 오전 9시다. 이대로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한다면 오후 1시쯤 산행을 끝낼 것 같고, 만일 공룡능선을 넘는다면 1시쯤 마등령에 도착해서 오후 4시쯤에는 설악동으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희운각 – 마등령 삼거리 : 5.1 km 약 4 시간
아직 다리에 힘이 남아 있다. 일단 신선대까지 가 보기로 했다. 신선 1봉에서 산솜다리를 만나보고 신선대에 올라가 공룡능선을 조망하고 상황을 살펴볼 작정이다. 급하면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빠르게 걸으면 되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언제 또 이런 좋은 날씨에 이 길을 걷겠나 싶기도 하였다.
그렇게 신선대에 도착하니 눈앞에 황홀경이 펼쳐진다. 그동안 여러 번 걸었던 길인데 초록빛에 덮인 바위 봉우리들을 보니 또 다시 새로운 모습이다. 롯데 타워처럼 날씬하게 뻗은 범봉(帆峰)은 공룡능선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1275봉과 함께 그 무리 중 단연 으뜸이고, 그 주변으로 이름이 있고 없고 유럽의 성 첨탑처럼 날카롭게 하늘로 뻗은 암봉(巖峰)들이 신비롭다.
공룡능선은 희운각에서 차례로 신선대-노인봉-1275봉-큰새봉-나한봉으로 이어지는데, 그 중간중간에 이름없는 봉우리가 몇 개 더 있다. 거리는 5 킬로미터로 그리 길지 않지만 이렇게 많은 고개를 넘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속도를 내기가 힘들고 몸이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그래도 보통 4시간이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두르지 않고 걷는다.
올해는 공룡능선에 산솜다리가 많이 보인다. 그리고 난장이붓꽃, 금강봄맞이꽃, 큰앵초꽃, 돌단풍 등 귀한 꽃들이 바위와 어우러져 예쁘게 피어 있다. 노인봉 전에 있는 산개나리는 벌써 잎이 무성하다. 지난주 서북능선에 아직 피지 않았던 자주솜대꽃이 공룡능선에는 많이 피어 있다. 이 능선길에는 이제 봄이 익어가고 있다.
1275봉을 넘을 때 반대방향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을 많이 마주쳤는데 그 이후로는 뜸하다. 1275봉이 거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으니 이 이후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조금 늦은 셈이다. 물론 그 이후로도 여러 명의 산객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은 희운각 대피소에 예약을 해 놓았다며 여유 있는 산행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