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outh Korea
time : Jul 17, 2024 6:28 PM
duration : 0h 19m 7s
distance : 0.9 km
total_ascent : 6 m
highest_point : 42 m
avg_speed : 3.1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1984년 대홍수
장마철에 접어들었는지 이번 주는 일주일 내내 비 예보가 내린 가운데 오늘은 출근길이 마치 물 폭탄이 터진 듯이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지하철 역에서 사무실까지 걷는 그 짧은 구간에서 운동화가 흠뻑 젖었다.
조금 일찍 퇴근하여 이발소에 들렸다. 늘 다니던 이발소인데 나이 얘기를 하다가 옛날 이 지역 얘기로 화제가 깊어진다. 1984년도 그리고 1990년도에 이곳에 큰 물난리가 나서 지금 이발소가 있는 건물도 2층까지 물이 차고 3층도 거의 다 잠겼었다고 한다.
이발사 아저씨는 올해 70인데 17살부터 이발을 시작했고 1982년에 이 자리에서 이발소를 차려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 이발사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 지역의 살아있는 역사다. 6남매의 맏이라서 모친이 돌아가시고 나서 부친과 다섯명의 동생과 아들과 딸 등 아홉 명이 한 집에서 살았는데 식구가 많다 보니 집을 얻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면도사로 일하는 그 부인이 집안의 화장실 등 공용 시설 청소를 솔선하여 맡아 하고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니 나중에는 집 주인이 다른 데로 이사가지 말라고 부탁하였다고 한다.
이야기의 발단이 된 장마 얘기가 다시 화제에 올라 1984년 물난리에 대해 다시 얘기를 하는데 집안의 화장실 물이 역류하여 시아버지와 함께 변기 뚜껑을 붙잡고 누르고 있다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급히 피신을 했는데 정부에서 마련한 대피소가 어느 초등학교 교실이었다. 그러나 대피소의 상황도 만만치가 않았다. 일단 사람들을 대피시켰으나 먹고 덮을 구호품이 없어 그곳 사람들은 굶었다. 하도 배가 고파서 면목동에 사는 언니에게 연락해서 라면이라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https://mungsun.tistory.com/461
그런데 그 당시 구호품 중에는 북한에서 지원해준 통일쌀과 모포가 있었다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얘기다. 그 이발사 부부의 말에 의하면 쌀은 맛이 없었고 그 때 받은 모포는 아직도 집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삶이 힘들었을 때의 일이 그리운 것은 아니겠지만 기억 속에 한 조각 추억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1990년 대홍수
1990년 홍수는 내게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독일에서 돌아와 인천시 간석동 석암빌라에 집을 마련하고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9월 9일 아침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집 앞에 물이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구두를 두 손에 들고 일단 큰 길로 나갔는데 거기 상황은 더 나빠 보였다. 차도에 있는 맨홀 뚜껑이 열리고 물이 역류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대가 만조(滿潮)기라서 바닷물이 차 오르니 빗물이 바다로 흐리지 못하고 오히려 바닷물이 올라왔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 사이 물은 더 불어서 허리까지 올라온다. 회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그날은 집에서 쉬고 다음 날 출근하라고 하였다.
https://www.inven.co.kr/board/webzine/2097/1894173
창문으로 내다보니 집 앞에 있는 십정 국민학교 운동장도 물에 잠겼다. 국민학교 운동장은 주변보다 약 1미터 정도 높았는데 그 넓은 운동장이 침수될 정도였으니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다음날 비가 그치고 출근하려고 나가니 전철이 온수역에서 오류동역까지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철로 지반이 약해져서 전철을 운행할 수 없다고 하였다. 가까스로 전철을 타고 온수역에서 내리니 역 앞에 트럭이 서 있는데 사람들이 올라타기에 덩달아 올라 타니 그 트럭이 오류동까지 가서 내려주었다. 그렇게 출근하니 어제 출근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퇴근을 하지 못하고 회사에서 밤을 새웠다고 하였다.
1925년 대홍수
이발을 하고 풍납토성 길을 따라 집으로 가는데 이 풍납토성 발굴의 계기가 된 것이 1925년 대홍수였다고 한다. 그 당시 기록을 읽어보니 대홍수로 인해 풍납토성이 무너지고 그 아래에 묻혀 있던 토기와 기와 조각 그리고 청동기 등이 드러났는데 그를 계기로 풍납토성을 문화재로 지정했다고 한다.
https://historylibrary.net/entry/기요노-겐지淸野謙次의-풍납토성-탐방기1926
지금의 풍납토성이 원래의 모습인지 아니면 다시 쌓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올림픽 공원에 있는 백제 역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형도 등을 보면 원래의 토성인 것 같다. 문화재청에서는 이 풍납토성 일대의 주택을 사들여 대대적인 발굴 및 공원 조성 사업을 한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탄생은 서기전 18년 백제가 세워진 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아직 그에 대한 물증이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만일 이 풍납토성이 한성백제국의 성터임이 확인된다면 우리나라 고대사의 연역이 확실하게 자리잡게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