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outh Korea
time : Dec 2, 2023 8:42 AM
duration : 6h 56m 5s
distance : 8.9 km
total_ascent : 910 m
highest_point : 897 m
avg_speed : 1.8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아주 오래전 오영과 함께 북한산에 오르다가 길 가에 세워 둔 푯말을 보고 아쉽게 내려온 적이 있었다. 푯말에는 과거 몇 년간 추락사고로 몇 명이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로 오랫동안 잊고 지내다가 다시 산행을 시작하면서 그 코스가 염초봉 또는 염치봉 바윗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나 갈 수 없는 길.
몇 년 전 고인돌 형님과 이 염초봉에 오르려고 원효봉을 넘어 북문 앞을 지나 성벽을 따라 암릉으로 가려다가 초소를 지키는 국립공원 지킴이의 제재로 뒤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이 코스에 가려면 헬멧과 안전장구를 갖추고 2인 이상 단체로 가야 한다.
염초봉이라는 이름이 낯설었다. 어떤 이는 염치봉이라고 하였다. 이 봉우리 이름은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영취산(靈鷲山)에서 유래하였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법당 밖에 자리를 마련하여 설법을 베풀었으니 이를 야단법석(惹端法席)이라고 한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질서 없이 시끌벅적 어지러운 분위기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전국에 영취산, 영취봉, 영축산 등의 이름이 많은 것은 그 산이 품고 있는 절간에 신도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야단법석을 펼칠 수 있기를 바라는 스님들의 간곡한 바램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의 바램은 이 영취봉에 한 번 올라가 보는 것이었다. 도대체 산이 어떻게 생겼길래 그리 엄하게 단속하는지 궁금하였고 또 바위를 타보는 재미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바램을 오늘 마침내 이룰 수 있었다.
원래 우리의 산행 코스는 백운대 아래에 있는 ‘여우굴’을 탐방하는 것이었다. 홍 작가님이 예전에 여우굴에 가본 적이 있다고 하여 안내하기로 하였는데 하도 오래 전이라 기억도 가물거리고 북문 앞에서 지키는 단속반 때문에 갈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만일 거길 가지 못한다면 아주 밋밋한 산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원효봉을 내려오는데 머리에 헬멧을 쓰고 허리춤에 하네스 기어를 착용한 사람이 옆을 지나가다가 우리와 마주쳤다. 여기서 이런 복장이면 분명히 염치봉으로 가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고 여쭤보았다. 올해 78세의 노익장이시다. 원래 친구들과 함께 다니는데 오늘은 다른 이들이 모두 일이 있어서 혼자 릿지 산행을 하려고 나왔다고 하신다. 혹시 하는 마음에 내가 따라가도 되겠느냐고 여쭈니 정말 가고 싶으냐고 여러 번 물으신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일행과 잠시 헤어져 염치봉, 아니 영취봉에 오르게 되었다.
영취봉-장군봉-백운대 릿지
내가 전에 와 봤던 곳까지 올라가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첫번째 바위 아래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상수(고수보다 더 높은 상수(上手))형님은 내게 헬멧과 하네스 기어를 채워 주셨다. 그리고 20미터짜리 자일을 꺼내 8자매듭 매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형님 자신은 허리춤에 줄을 매었다. 그 줄은 자일을 묶는 하네스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첫번째 암벽을 기어오른다. 상수 형님은 허리춤에 자일을 묶고 선등(先登)으로 암벽을 타면서 내게 잘 보고 따라서 올라오라고 하신다. 자일을 묶어 놓고 신호를 받고 오르는데 발을 디딜 수 있는 곳도 있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홀드도 충분히 있었지만 마지막 구간은 팽팽한 자일의 당겨짐을 느끼면서 올라야 했다.
양지쪽 바위는 대부분 뽀송뽀송 말라 있었다. 장군봉(將軍峯)을 옆으로 돌아서 고도를 높이니 바위 표면이 살짝 얼었다. 말바위 아래는 바위 등을 타고 지나가는 곳인데 표면이 얼어서 바위 아래에 설치된 안전펜스를 잡고 지나갔다. 말바위에는 쇠사슬이 설치되어 있는데 상수 형님은 그 쇠사슬을 잡고 먼저 올라가서 자일을 내려 주신다. 하수(下手)를 위한 배려다.
상수 형님의 발짓을 보면서 건너 뛰고 오르면서 차츰 고도를 높인다. 바위 틈에 자라는 소나무와 신갈나무는 산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가파른 암벽에서는 하강기를 이용하여 내려갔다. 처음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옛날 군에서 유격훈련 받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는 하강기를 이용하지 않고 매듭을 이용하여 직벽을 뛰어내리는 훈련도 하였으나 지금은 그 때 어떻게 했는지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다.
백운봉 위에 나부끼는 태극기가 보이고 릿지길도 거의 끝나갈 즈음 간간히 눈발이 나부낀다. 상수 형님은 손가락이 드러난 장갑을 끼고 있어 손이 매우 시리다고 하신다. 나는 긴장한 탓인지 장갑을 끼지 않았는데도 별 느낌이 없다.
백운봉 아래 약 3미터 뜸 되는 바위가 있는데 가운데에 긴 홈이 패어 있다. 그 홈의 양쪽 바위는 표면이 얼어서 의지할 수가 없고 오직 그 홈에 신발을 끼우고 기어 올라가야 한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고 쌓여 있다. 중간쯤 올랐을 때 등산화가 홈에 끼어 빠지지 않는다. 달리 손에 잡을 만한 것도 없이 바둥거리면서 겨우 등산화를 빼어 다시 오를 수 있었다.
여우굴
그렇게 우리는 약 두시간에 걸친 염초봉 릿지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백운대 정상에는 궂은 날씨 때문인지 평소에 비해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백운대 암문쪽으로 내려가면서 열환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냐고 물으니 지금 백운대에 거의 다 올라갔다고 한다. 그러면 내가 내려가면서 만날 수 있겠다고 하니 그게 아니고….
열환이와 홍 작가님은 내가 상수 형님을 따라서 염초봉으로 향하자 내 뒤를 따라서 오다가 다른 은인을 만나서 여우굴까지 안내를 받고 백운대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상수 형님에게 그 얘기를 하니 ‘아 그거 쉽지 않을 텐데.’하고 걱정하신다.
우리는 백운대 암문 조금 못 미쳐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상수 형님은 보온 밥통에 싸온 따끈따끈한 밥을 나눠 주신다. 그렇게 간단한 점심을 먹고 커피로 입가심까지 하고 났는데 열환이에게서 전화가 오고 금방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열환이는 백운대 아래 홈바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는데 허리가 조금 아프다고 한다. 바위를 타면서 무릎으로 기는 바람에 피가 묻어 있었다. 이래저래 험난한 산행을 무사히 마쳤지만 열환이의 사고 장면을 목격한 홍 작가님은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린다고 하였다.
나는 상수 형님과 같이 내려가서 식사라도 할 생각으로 따라 내려가는데 두 사람은 뒤에 조금 남아서 쉬다가 오겠다고 한다. 상수 형님은 북한산을 구석구석 잘 알고 계신다. 노적봉을 옆으로 돌아서 호젓한 능선길을 걸어 내려오니 노적사 입구에서 주 탐방로와 만난다.
너무 빨리 내려왔다. 중성문과 대서문을 지나 탐방로 입구에 도착하여 전화를 하니 보국문까지 돌아가서 내려오는 중이라고 한다. 서로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내려오는데 얼마나 걸릴 지 알 수가 없다. 상수 형님은 차로 큰길까지 태워 주시겠다고 하는데 나는 일행을 기다려야 하겠기에 다음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해가 저물고 찬 바람이 불어온다. 이제나 저제나 친구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다가 전화를 하니 아직 더 오래 걸릴 것 같다고 한다.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호떡을 먹고 난로 옆에 앉았다. 식당 주인은 몇 년 전에 여우굴 근처에서 추락사고가 있었다며 암릉 산행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걱정한다.
두 시간쯤 기다리니 열환이와 홍 작가님이 들어온다. 모두 모처럼 멋진 산행을 했다면서 만면에 행복이 묻어 있다. 제육볶음과 감자전으로 저녁을 시켜 먹었다. 마음이 즐거운 열환이는 막걸리를 두 병이나 후딱 마셔버린다. 열환이는 마지막 구간에서 떨어진 것이 오늘 산행에서 옥의 티라며 농담을 하는 걸 보니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우리는 내일 있을 장성봉 산행을 계획대로 추진하기로 하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