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enam-gun, Jeollanam-do, South Korea
time : Mar 1, 2024 9:24 AM
duration : 6h 53m 45s
distance : 19.3 km
total_ascent : 745 m
highest_point : 375 m
avg_speed : 3.3 km/h
user_id : dunya.miro
user_firstname : Miro
user_lastname : Jo
연휴를 맞이해 내려온 해남에서의 첫 일정은 달마고도 트레킹.미황사 주차장에 주차 후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일기예보에서 해남 최대 풍속이 10m/s 이상에 달하는 걸로 나왔는데, 과연 1코스 초반부터 어마무시한 바람 소리 속에서 걸어야 했다. 다행히 양 옆의 나무 숲이 직접적인 바람은 막아줬지만, 나무 꼭대기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폼이 엄청난 바람이다. 소설 [양과 강철의 숲]에서 산골 출신 주인공은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밤바다는 산과 같은 소리를 낸다고 했는데, 아아 이 소리를 말하는 거구나 싶었다. 호젓한 숲길에 사람이라고는 나 하나뿐이라 날씨만 좋았다면 산의 고요함 속에서 명상하듯 걸었을텐데, 귀청을 때리는 거센 산 속 바람 소리에 혼이 나갈 지경이었지만, 산을 정말 사랑한다면 이런 흐린 날 나무 사이사이로 몰아치는 바람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모든 모습을 사랑하듯이, 맑은 산도, 사나운 산도 모두 사랑할 수 있어야 진정 산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애정을 가지고 움직이고자 했다.
상념에 빠졌다가, 바람 소리에 잠시 넋을 놓았다가, 그 바람 소리를 온전히 느끼고 사랑하려고 시도해 보다가, 달마고도를 걷지 말고 정상으로 올라가 바위 능선을 타고 이동하는게 훨씬 멋지지 않았을까 후회하다가, 몸은 달마고도를 걷는데 생각은 저 멀리 어딘가를 헤매는 나를 발견하고 “현존”에 집중하자! 하며 다시 내 오감과 마음을 이 순간에 돌려놓으려 노력하다가.. 이 모든 걸 끝없이 반복하며 걸어낸 19.5km였다.
14km 정도를 걸은 상태에서 도솔암 가는 길을 발견하고 올라갔는데, 이미 많이 걸어 피로해진 상태에서 급경사를 타려니 고작 350m를 젖먹던 힘까지 끌어내어 올라야 했다. 그렇게 오른 도솔암은 생각보다 별 게 없어 보여서, 여기에 힘을 쓰지 말고 차라리 달마봉에 올라 블랙야크 100대 명산 인증이나 하나 더 찍어야 했다고 후회했으나.. 다행히 다음 날 몸에 큰 타격 없이 해남 여행을 잘 했고 이튿날 달마봉 인증도 완료했으니 도솔암 찍기를 잘 했다 싶다.
사실 달마산 정상부에서 바위를 타며 종주하는 코스를 포기하고 달마고도를 택한 건, 달마고도 트레킹이라는 이름이 주는 뭔가 있어보이는 느낌과 완주 인증이 있다는 점도 한 몫 했던 것 같기도 하다ㅎㅎ 인증지마다 QR코드로 찍도록 되어 있었는데, 별 생각 없이 가다가 처음 마주친 인증지는 알고 보니 두 번째 인증지였다. 나도 모르게 첫 번째 인증지를 지나쳐버린 것이다. 완주 인증서와 메달 따위 별 관심이 없긴 했지만 이왕 도는 거 인증하는 재미도 쏠쏠하겠다 했는데 첫 인증부터 실패해서 실망해 버렸고, 이후 인증지는 보일 때 마다 인증하기는 했지만 맨 마지막 인증지를 또 놓친 채 미황사로 복귀하는 바람에 인증은 망했다 했는데, 이틀 뒤였던가 해남군에서 문자가 왔다. 놓친 인증은 인증지에서 찍은 사진 등으로 대체 승인해 준다고.. 전화해서 인증지를 모르고 지나치는 바람에 사진조차도 없는데 방법이 있냐고 물었더니, 어짜피 누락된 2개 외에 모든 인증지를 찍었다는 자체가 어쨌든 완주했다는 말이 되어서 그런가, 완주로 인정해주고 기념품을 보내주겠다고 한다ㅎㅎ 해남에서도 완주자 인원이 많아지는게 홍보에 더 유리해서 그런 것 같다.
원래 달마고도를 완주하고 마지막에 미황사에서 달마봉으로 올라 정상 인증까지 하고 돌아오는 게 목표였으나, 달마고도 도는 중간에 도솔암 다녀오느라 힘을 너무 빼버렸고 시간도 이미 4시나 되어서 포기하기로 했다. 미련없이 두륜산 장춘마을 숙소로 돌아와 씻고 숙소 앞 보리밥집에서 먹은 저녁식사는 어찌나 맛있던지.
이렇게 해남 여행 첫 번째 미션을 완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