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gu, South Korea
time : Sep 30, 2025 3:23 PM
duration : 1h 36m 57s
distance : 1.8 km
total_ascent : 46 m
highest_point : 92 m
avg_speed : 1.6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올해는 추석 연휴와 개천절 그리고 한글날이 이어지면서 긴 연휴를 앞두고 있다. 연휴때는 교통이 번잡할 것을 염려하여 미리 다녀오기로 하고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집을 나섰다. 예상했던 것처럼 차는 밀리지 않고 예보되어 있던 비도 내리지 않아 운전을 하기에도 편안했다.
대구에 도착하니 오후 두 시가 조금 지났다. 잠시 앉아 있다가 오늘 걸음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을 확인하고 운동 겸 잠시 외출을 하였다. 카카오맵을 열어서 가까운 식물원을 검색하니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식물원/온실’이라는 장소가 표시되어 있기에 산책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걸어서 어디든 찾아가는 것에는 이골이 나 있으니 골목길을 누비누비 걷다 보니 그 유명한 대구 서부시장을 지나고 이름이 정겨운 ‘오미가미路’가 나타나더니 오래된 가정집 벽에 꽃과 물고기 그림이 보인다.
청어(靑魚 Herring)
옛날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벌을 피해서 달아날 수 있었던 소도(蘇塗) 표시로 긴 장대 끝에 새 모양의 조각품을 세워두었다고 하는데, 갑자기 동네 어귀에 긴 장대 끝에 새 대신 물고기 조각이 나타났다. 그리고 기 낚싯대 끝에 힘차게 용을 쓰는 물고기 그림이 보이더니 물고기 떼 옆에 우물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옆 귀퉁이에 이런 일련의 그림과 조각품에 대한 사연을 설명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 물고기는 청어(靑魚)라고 하였다. 옛날 이 마을에 과부 한 사람이 살았다. 그 과부는 마음씨가 착하여 오가는 나그네들을 재워주고 먹여주었지만 집이 가난하여 맘껏 대접하지 못함을 아쉬워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선비 한 명이 들었다. 과부는 대접할 찬도 변변치 않았지만 밥이라도 정성껏 지어 대접할 생각으로 샘으로 물을 길으러 갔다. 두레박을 내려 물을 깃는데 평소에 비해 두레박이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그렇게 힘들여 올린 두레박에 청어 한 마리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과부는 이게 손님을 잘 대접하라는 조물주의 뜻이라 생각하고 그 물고기를 정성껏 요리하여 선비의 밥상에 올렸다.
그 뒤로도 집에 손님이 들 때마다 그 손님의 수만큼 청어가 두레박에 들어 있어 과부는 오래도록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다른 글에는 이 곳을 흐르는 달서천에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 금호강을 거쳐 올라온 청어가 많이 잡혔다는 이야기가 써 있었다. 물고기에 문외한인 나에게 새롭게 와 닿는 이야기였다. 젊었을 때 독일에서 빵 사이에 넣어서 팔던 것이 삭힌 청어였다는 것을 알고 생소한 물고기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북해의 차가운 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청어가 금호강을 거쳐 달서천까지 올라왔다는 이야기는 이 과부 이야기만큼이나 지어낸 동화 같은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니 청어는 우리나라 바다에서도 흔하게 잡히는 물고기인데 겨울철에 먹는 ‘과메기’가 바로 청어라고 한다. 그 청어를 대구에서 만나게 되다니 참 재미있다.
달성(達城) 공원(公園)
내가 찾아가려는 식물원/온실로 가는 길 담장에는 꽃 그림이 많았다. 그리고 넓지 않은 골목길에 여러가지 꽃 화분과 화단이 조성되어 있었다. 마치 어딘가 은밀하게 숨겨놓은 비밀정원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카카오 지도가 표시해 주는 길을 따라 골목을 지나 찾아간 곳에는 유리로 되어 있는 작은 온실(溫室)이 있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처럼 하필 내가 갔을 때는 온실 문이 닫혀 있었다. 유리벽 사이로 보이는 식물들은 우리가 평소 볼 수 있는 선인장이나 남방계 식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것을 보니 문이 닫혀 있어도 관람을 꼭 하고 싶으면 연락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내 마음이 그리 절실하지 않았기에 그만두었다.
지도를 보니 아주 가까운 곳에 달성공원 서문(西門)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달성공원이 처가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울 줄은 생각지 못했었다. 아마 이것도 내가 걷는 것에 습관이 든 덕분에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옛날 대학교 다닐 때 갑자기 찾아오신 아부지를 모시고 대구의 명소를 보여드리겠다는 생각에 모시고 갔던 곳이 달성 공원이었다. 자취 집 할머니가 추천했던 것인데, 그때만 해도 달성 공원은 대구에 있는 초등 중등 학교 학생들이 소풍 때 찾아가는 정말 명소 중의 명소였던 모양이었다. 1981년 여름이었나 보다. 더운 날씨에 버스를 타고 찾아간 달성 공원 동물원은 내게도 신기했고 아부지도 흥미롭게 구경하셨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곧바로 물개 우리가 나타나고 곧 이어 벵갈 호랑이 우리가 보였다. 달성 공원의 구조를 보니 제일 외곽에 1,300 미터에 달하는 토성이 둘러싸고 있고, 그 안쪽으로 동물 사육장이 자리 잡았고 그 안쪽은 편평한 잔디밭에 많은 노거수(老巨樹)가 자라고 있는 정원이었다.
달성(達城)은 경주의 월성(月城)과 같은 의미였을 것으로 보인다. 월성은 달이 뜨는 성이고 달성은 달이 지는 성이었을 것이다. 옛날 신라에서는 현재의 대구(大邱)를 달구화(達句火)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는 우리말로 ‘달긔벌’이다. 경주 월성에서 대구 달성까지 약 80 킬로미터다. 자동차로 한 시간 반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옛날 월성에서 달이 뜨는 것을 보고 말을 타고 대구의 달성에 이르면 넓은 벌판에 달빛을 환하게 비추며 달성 너머로 지는 달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달긔벌이 달구벌이 되었고 마침내 지금의 대구라는 지역명으로 고정화된 것 같다.
달성에는 조개무덤과 옛 철기시대 유물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이후 달성 서씨가 이 달성에 근거지를 두고 살았으며, 조선 세종 대왕 때 군사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조정에 헌납하였다. 그 후 일제시대에는 이 곳에 신사를 세워 조선인의 정신을 개조하는 도구로 삼았으며 해방 이후 신사 건물이 헐리고 대구 부립박물관으로 이용하였다. 그후 동물원으로 개장하여 시민공원으로 발전하였다.
https://blog.naver.com/daeguvisit/110112599072
공원 경내에는 수령이 300년이나 된다는 참느릅나무를 비롯하여 회화나무 여러 그루가 자라고 있고 또 그만큼 오래 되었을 법한 향나무가 많이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다양한 수목이 자라고 동물원도 겸하고 있는 달성 공원은 대구 시민들의 추억 속에 자리잡은 멋진 공원이다.
공원 안에 있는 향토 문화관을 관람하고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는 저녁 무렵에 처가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