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갑산 세정사

요즘은 주중에 승마 강습을 받기도 하고 이번 주처럼 외국에서 손님이 오기도 하면 시간이 어찌 가는지 모르게 빨리 지나간다. 그러다가 주말 산행 계획도 세우지 못한 채 주말을 맞게 된다. 금요일 저녁에 지난 사진들을 둘러보다가 세정사 계곡에 피는 앵초꽃이 보고 싶어졌다. 꽃은 날씨에 변화가 있다고 해도 큰 틀에서 보면 계절별로 꼭 정해진 시기에 피고 지는 것이기에 과거의 사진을 보고 야생화 탐방 시기를 맞춰보면 대략 틀리지 않는다. 일기예보에 비가 내린다고 한다. 그까짓 봄비는 대략 우산 하나면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오후 3시경부터 내린다고 하니 조금 일찍 출발하면 비를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반찬은 김치에 계란 후라이. 별도로 모닝빵에 양파와 전에 제사 때 만들어 놓았던 동그랑땡을 넣어서 샌드위치를 챙겼다. 그리고 우산 하나 넣으니 산행 준비 다 되었다. 적갑산(560 m) 상봉 역에서 경의 중앙선 전철로 갈아타고 도심 역으로 간다. 하필이면 내가 탄 전철이 한 정거장 전 역인 덕소역 까지만 운행하는 것이어서 다음 열차가 올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그래도 일찍 집을 나선 덕분에 10시에 도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건물들이 늘어선 뒤쪽으로 갑산으로 가는 둘레길이 이어져 있었다. 대로변에 비해 한적하고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라서 좋다. 이름 모르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를 들으며 저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진다. 멜로디는 매우 단순하게 들리는데 저들끼리는 그 의미를 알아채고 서로 소통을 한다. 나는 어떤 때 지하철에서 몇몇 사람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를 유심히 들어보는데 중요한 내용으로 대화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많은 경우 그냥 무의미한 말을 반복하고 똑바로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그냥 따라서 웃는 것을 본다. 그럴 때면 나는 과연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과 새들의 지저귐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봄이 되니 주말농장에 땅 떼기라도 얻은 사람들의 손길이 바쁘다. 요즘같이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를 때는 다만 채소라도 심어 먹을 수 있는 땅 떼기라도 가진 것이 위안이 되겠다. 개울까지 이어지는 밭이 끝나고 금방 산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시작된다. 진달래가 지고 철쭉이 이어서 피어난다. 나무마다 연록색의 새 잎이 돋아나고 땅에는 각시붓꽃과 선밀밀 등 키 작은 야생화들이 띄엄띄엄 자라고 바위에는 매화말발도리 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 날이 선선하여 땀도 나지 않는다. 오후 세 시에 내리기로 한 비는 내가 산으로 들어서자 마자 내리기 시작하여 산행을 마칠 때까지 이어진다. 비가 내리니 더욱 한적해진 산길을 거든 기분도 참 좋다. 적갑산 정상에서 오른쪽 예봉산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가 활공장(滑空場)에 이르렀다. 나무를 다 베어내었기에 시야는 끝없이 펼쳐지지만 약간의 미세먼지와 안개로 인해 오늘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데 피나물은 비가 내린 탓인지 입을 꼭 다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고 홀아비바람꽃도 비에 젖어 있다. 귀룽나무 꽃은 이제 막 피기 시작했고 산의 나무들은 하나같이 연초록 새잎으로 단장하고 몽실몽실 피어난다. 세정사 계곡 계곡 끝에 세정사라는 절이 있는 계곡이다. 이른 봄부터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나기 때문에 꽃 사진을 찍으러 이 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은 앵초가 주인공이다. 연분홍 빛깔의 연약한 꽃대가 바람에 흔들리면 청초한 앵초꽃의 모습은 저 멀리 조선시대 어느 양반집 규수가 살아생전 맺지 못한 연정을 품고 다시 이 세상에 환생한 것 같다. 어떤 것은 이 작은 빗방울도 힘에 겨운 듯 몸을 낮게 기울이고 또 어떤 것은 봄 기운을 얻어 몸을 꼿꼿하게 일으킨 채 바람에 하늘거린다. 그런 줄기 끝에 연분홍 꽃잎은 수줍은 듯 고개 숙인 채 배시시 웃어준다. 비가 와서 그런지 일요일인데도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산나물을 따러 왔다는 네 명의 나물꾼들이 다래순을 따고 내려오다가 앵초꽃을 보며 예쁘다고 감탄한다. 세정사 뒷 켠에 있는 귀룽나무에는 곧 벌어질 꽃 송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절 마당에는 영산홍이 가득 피어 있고 그 사이 빈 틈에는 봄맞이 꽃이 많이 피어 있으나 비에 젖은 채 모두 꽃 봉오리를 닫고 있다. 세정사에서 운길산역까지 이어지는 약 2 km의 좁은 길 가에도 죽단화와 금낭화 꽃 그리고 으름꽃 등 심심찮게 다양한 야생화들이 피어 있다. 서울로 가는 전철 안에는 가까운 산에서 봄나물을 채취해 가는 아낙네들이 많이 보인다. 결코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지만 그들은 두릅과 다래순 등 야생에서 채취한 봄나물로 적어도 몇 끼 정도는 반찬 걱정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Hiking/Backpacking

Namyangju-si, South Korea
bethewise photo
time : Apr 20, 2024 9:10 AM
duration : 5h 44m 28s
distance : 12.6 km
total_ascent : 649 m
highest_point : 594 m
avg_speed : 2.4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요즘은 주중에 승마 강습을 받기도 하고 이번 주처럼 외국에서 손님이 오기도 하면 시간이 어찌 가는지 모르게 빨리 지나간다. 그러다가 주말 산행 계획도 세우지 못한 채 주말을 맞게 된다. 금요일 저녁에 지난 사진들을 둘러보다가 세정사 계곡에 피는 앵초꽃이 보고 싶어졌다. 꽃은 날씨에 변화가 있다고 해도 큰 틀에서 보면 계절별로 꼭 정해진 시기에 피고 지는 것이기에 과거의 사진을 보고 야생화 탐방 시기를 맞춰보면 대략 틀리지 않는다. 일기예보에 비가 내린다고 한다. 그까짓 봄비는 대략 우산 하나면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오후 3시경부터 내린다고 하니 조금 일찍 출발하면 비를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반찬은 김치에 계란 후라이. 별도로 모닝빵에 양파와 전에 제사 때 만들어 놓았던 동그랑땡을 넣어서 샌드위치를 챙겼다. 그리고 우산 하나 넣으니 산행 준비 다 되었다. 적갑산(560 m) 상봉 역에서 경의 중앙선 전철로 갈아타고 도심 역으로 간다. 하필이면 내가 탄 전철이 한 정거장 전 역인 덕소역 까지만 운행하는 것이어서 다음 열차가 올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그래도 일찍 집을 나선 덕분에 10시에 도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건물들이 늘어선 뒤쪽으로 갑산으로 가는 둘레길이 이어져 있었다. 대로변에 비해 한적하고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라서 좋다. 이름 모르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를 들으며 저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진다. 멜로디는 매우 단순하게 들리는데 저들끼리는 그 의미를 알아채고 서로 소통을 한다. 나는 어떤 때 지하철에서 몇몇 사람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를 유심히 들어보는데 중요한 내용으로 대화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많은 경우 그냥 무의미한 말을 반복하고 똑바로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그냥 따라서 웃는 것을 본다. 그럴 때면 나는 과연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과 새들의 지저귐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봄이 되니 주말농장에 땅 떼기라도 얻은 사람들의 손길이 바쁘다. 요즘같이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를 때는 다만 채소라도 심어 먹을 수 있는 땅 떼기라도 가진 것이 위안이 되겠다. 개울까지 이어지는 밭이 끝나고 금방 산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시작된다. 진달래가 지고 철쭉이 이어서 피어난다. 나무마다 연록색의 새 잎이 돋아나고 땅에는 각시붓꽃과 선밀밀 등 키 작은 야생화들이 띄엄띄엄 자라고 바위에는 매화말발도리 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 날이 선선하여 땀도 나지 않는다. 오후 세 시에 내리기로 한 비는 내가 산으로 들어서자 마자 내리기 시작하여 산행을 마칠 때까지 이어진다. 비가 내리니 더욱 한적해진 산길을 거든 기분도 참 좋다. 적갑산 정상에서 오른쪽 예봉산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가 활공장(滑空場)에 이르렀다. 나무를 다 베어내었기에 시야는 끝없이 펼쳐지지만 약간의 미세먼지와 안개로 인해 오늘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데 피나물은 비가 내린 탓인지 입을 꼭 다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고 홀아비바람꽃도 비에 젖어 있다. 귀룽나무 꽃은 이제 막 피기 시작했고 산의 나무들은 하나같이 연초록 새잎으로 단장하고 몽실몽실 피어난다. 세정사 계곡 계곡 끝에 세정사라는 절이 있는 계곡이다. 이른 봄부터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나기 때문에 꽃 사진을 찍으러 이 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은 앵초가 주인공이다. 연분홍 빛깔의 연약한 꽃대가 바람에 흔들리면 청초한 앵초꽃의 모습은 저 멀리 조선시대 어느 양반집 규수가 살아생전 맺지 못한 연정을 품고 다시 이 세상에 환생한 것 같다. 어떤 것은 이 작은 빗방울도 힘에 겨운 듯 몸을 낮게 기울이고 또 어떤 것은 봄 기운을 얻어 몸을 꼿꼿하게 일으킨 채 바람에 하늘거린다. 그런 줄기 끝에 연분홍 꽃잎은 수줍은 듯 고개 숙인 채 배시시 웃어준다. 비가 와서 그런지 일요일인데도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산나물을 따러 왔다는 네 명의 나물꾼들이 다래순을 따고 내려오다가 앵초꽃을 보며 예쁘다고 감탄한다. 세정사 뒷 켠에 있는 귀룽나무에는 곧 벌어질 꽃 송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절 마당에는 영산홍이 가득 피어 있고 그 사이 빈 틈에는 봄맞이 꽃이 많이 피어 있으나 비에 젖은 채 모두 꽃 봉오리를 닫고 있다. 세정사에서 운길산역까지 이어지는 약 2 km의 좁은 길 가에도 죽단화와 금낭화 꽃 그리고 으름꽃 등 심심찮게 다양한 야생화들이 피어 있다. 서울로 가는 전철 안에는 가까운 산에서 봄나물을 채취해 가는 아낙네들이 많이 보인다. 결코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지만 그들은 두릅과 다래순 등 야생에서 채취한 봄나물로 적어도 몇 끼 정도는 반찬 걱정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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