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outh Korea
time : Nov 29, 2023 8:02 PM
duration : 0h 10m 29s
distance : 0.8 km
total_ascent : 11 m
highest_point : 55 m
avg_speed : 5.0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롯데 시네마에 가서 5시 30분에 시작하는 영화 “서울의 봄”을 보았다. 1시간 30분간 상영하는데 1979년 12.12 사태를 소재로 하여 만든 영화다. 우리는 대부분 1980년에 있었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그 5.18 운동의 단초가 된 12.12 사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김성수 감독은 이 사태가 일어난 24시간 용산의 국방부와 광화문의 청와대 그리고 과천의 수도경비사령부 등 주요 기관의 움직임을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변경하였는데 예를 들면 전두환(전두광) 노태우(노태건) 정승화(정상호) 장태완(이태신) 등인데 김성수 감독은 이렇게 이름을 각색하면서도 각 인물에 부여하는 성격을 감안한 느낌이 든다. 전두환은 미친 놈(광(狂))이고 장태완은 이순신처럼 정의로운 사람이다. 이태신이 수경사 30단(청와대 파견부대)으로 향할 때 광화문을 지나면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올려다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https://namu.wiki/w/하나회
이 영화의 실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79년이다. 쿠데타에 성공한 신군부는 그동안 국가의 요직을 다 차지하고 나름대로 엄청난 경제적 부(富)와 영광을 누렸다. 그들은 김영삼 정부 때 하나회가 해체되고 청문회를 통해 정치적 거세를 당한 후에도 자기들만의 충정심으로 전두환을 중심으로 뭉쳐 지냈다. 자기 수중에는 19만원 밖에 없다면서 온갖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였고 그의 후배들이 베풀어주는 생일파티도 거창하게 치루는 장면이 언론에 노출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전두환의 손자가 전두환의 가족들이 누리는 호화로운 생활을 폭로하는 일까지 있었으니 그 쿠데타 집단의 부패와 행패가 얼마나 심했는지 대략 추정해 볼 수 있겠다.
2021년 노태우와 전두환이 사망하였다. 그 외 쿠데타에 참여했던 신군부 멤버들의 근황은 알 수 없으나 대부분 삶의 영광을 다 누리고 노환으로 사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전두환을 영웅시하는 정치인이 꽤 많이 있다. 특히 태극기부대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이라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12.12 군사 반란 사건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일찌감치 앗아간 사건이다. 18년간 지속된 박정희 독재정권이 김재규의 암살 사건으로 순식간에 끝이 나면서 우리에게는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울 기회가 생겨났었다. 1980년 국보위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장충제육관에서 실시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단독 출마해 99.9%의 득표로 제11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헌법을 개정하고 다시 치러진 대의원 선거에서 1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전두환의 공적을 치하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가 경제적 성장을 이끌었으며 사회를 깨끗하게 정화하였으며 부정부패를 척결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허황된 정보는 전두환이 언론 통폐합을 통해 언론을 통제하고 그 언론을 자신들의 치적을 선전하는 도구로 삼아 일반 국민들을 세뇌시킨 결과일 뿐이다. 그 증거로 전두환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70~80대 이상의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봄’은 지나간 역사의 어두운 면을 끄집어 내어 우리의 눈 앞에 펼쳐 놓은 이야기다. 이제 43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이런 영화나 기록물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50년 후의 사람들은 전두환이 쓴 자신의 회고록 등을 통해 다시 한 번 왜곡된 역사에 마음이 기울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