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jeongbu-si, Gyeonggi-do, South Korea
time : Aug 7, 2020 6:53 PM
duration : 0h 13m 11s
distance : 0.5 km
total_ascent : 21 m
highest_point : 99 m
avg_speed : 2.3 km/h
user_id : carabia
user_firstname : 정근
user_lastname : 송
정문부(1565-1624)는 1565년 한양에서 태어나 조선의 문신이며 의병장이다.
1585년 생원과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1588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홍문관,사간원,사헌부 등에서 두루 관직을 역임하였다.
1591년 함경도 지방에 근무하던 중에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은 전투력이 상실되어 함경도까지 함락되니 이런 상황에 회령지방인 경성과 길주에서 국경인.국세필.정말수 등이
반란을 일으켜 왕자인 임해군과 순화군을 잡아 일본 왜장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기며 투항하는 사건이 발행한다.
북변사로 근무하던 정문부는 강문우,이봉수,지달원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경성 전투에서 국세필이 있는 경성과 길주의 가토 우마노조 왜놈과의
공조를 못하도록 연락을 끊는 전략으로 국세필을 회유하여
왜병 40여명을 강문우가 죽이고, 이를 눈치 챈 왜놈들은 90여명을 경성으로 가게 하였다. 이를 유인하여 모두 죽였다.
회령 명천 전투에서
국경인이 살해되고 반란군 잔당 정말수를 제거하기 위해 정문부는 명천에 60여명의 기마병으로 하여금 성을 습격하여 정말수를 처형하였다.
그 후 국세필과 반란 잔당을 처형하고 함경도 지역을 수복한다.
석성령 전투에서는 왜군 1000여명을 매복작전으로 몰살시킨다.
길주 전투에서는 왜놈이 주둔한 길주성을 포위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한후 영동에 있는 왜병 수천명을 괴멸시킨다.
함경도지방이었던 의병장이었던 정문부가
일본군을 물린친 전투를 북관대첩이라 한다.
이런 훌륭한 활약상을 당시 순찰사였던 윤탁연이 선조에게 정문부의 공을 감하여 보고하여 포상 받지 못하고 1615년 부총관에 임명되어 근무중 관직을 포기하고 낙향한다.
1623년에 가장 무능한 왕,
인조는 이귀.김류.김자점.이괄 등과 함께
이복 큰아버지인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찬탈한다.
1923년 전주부윤으로 복직중에
1624년 이괄이 2등 공신이 된 것에 불만을 느껴 난을 이르키니,
도망치기 좋아하는 인조는 한양을 버리고
공주로 도망간다.
그 후에 이괄의 난이 진압되면서 관련자를 처벌중에
정문부가 억울하게 옥사하고 만다.
사후에 함경도 지방민의 건의에 따라 시호를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제수 받는다.
후에 숙종때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함경도 길주에 북관대첩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