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족 역사기행-3.1 발해 상경유지박물관

오늘의 여정; 발해박물관 발해상경성 용천부 흥륭사 길림시 숙박 상경 용천부(上京龙泉府)로 추정되는 유적은 흑룡강성(黑龙江省) 영안시(宁安市)의 발해진(渤海镇) 경내에 있으며 경박호(镜泊湖) 동북쪽의 목단강(牡丹江) 부근에 있는데 외성의 둘레 길이는 16.3km에 총 면적은 16.4㎢이다. 상경 용천부는 발해(渤海)의 수도로 가장 오랫동안 사용된 곳이었는데 《요사(辽史)》에서는 홀한성(忽汗城)이라고 하였다. 발해의 3대 왕인 문왕(文王)이 756년 초(혹은 755년)에 두번째 수도였던 중경 현덕부(中京顯德府)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다. 그리고 이후 785년에서 794년까지 약 10년 동안 동경 용원부(東京龍原府)를 수도로 했다가 5대 왕인 성왕(成王)이 다시 상경 용천부로 수도를 옮긴 후로 발해가 망한 927년까지 1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발해의 수도였다. ☆ 발해의 첫번째 수도는 698년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 근거지로 한 동모산(東牟山)이다. 이후 742년에 문왕이 중경현덕부로 수도를 옮겼다. ☆ 발해는 지방 행정구역을 5경(京) 15부(府) 62주(州)로 편제했는데 상경은 5경의 하나로 나머지는 중경 현덕부, 동경 용원부, 서경 압록부(西京鴨綠府), 남경 남해부(南京南海府)이다.    상경 용천부로 추정되는 곳의 왕성 위치와 배치 등은 당나라 장안성을 거의 그대로 본따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나라에 의해 망한 뒤 유민들이 강제 이주 당한 뒤에 폐허로 바뀌었다가 청나라 초기의 사적들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는데 《동경기(东京记)》에서는 이곳에 대해 "영공대의 서남쪽 60리를 사령이라 하고 사령의 동쪽 10여리에 고성이 있어 이곳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동경이라고 하는데 대개 금나라의 옛 도읍이라고 한다[宁公台西南六十里曰沙岭, 岭东十余里, 有古城焉, 土人相传曰东京, 盖金祖故都是也.]."라고 하였으며 《영고탑기략(宁古塔纪略)》에서도 "100리를 가면 사령에 이르는데 첫 번째 역참에 금나라의 상경성이 있다. 마이하에 근접해 있는데 궁전터가 아직도 있다[一百里至沙岭, 第一站, 有金之上京城. 临马耳河, 宫殿基址尚存.]."라고 하여 이를 금나라의 상경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동경이라는 이름 때문에 동경성(东京城)이나 동경둔(东京屯)이라 불리게 되었다.     1909년에 일본의 백조고길(白鳥庫吉)이 이 성을 답사한 적이 있으며 1931년에는 러시아의 포노소프(B.B. Ponosov)가 조사하기도 했었다. 최초의 고고학 발굴 조사는 1933년과 34년의 이년 동안 일본의 동아고고학회(東亞考古學會)가 진행한 것으로 이를 통해 여기가 발해의 상경 용천부로 비정되었다. 1961년에는 중국 국무원에서 이 곳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로 지정하였다. 1963년과 64년에는 북한과 중국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대대적인 발굴 조사를 하였고, 이후로도 수 차례의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멀리 경박호(鏡泊湖)로부터 펼쳐진 현무암 충적평야의 동경성 분지에 철저한 계획 아래 만든 이 곳은 외성(外城), 궁성(宮城), 황성(皇城)으로 이루어졌으며 3겹의 성벽은 서로 일정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성문도 일직선으로 연결된다. 다만 성벽의 축조시점은 조금 달라서 처음에 황성과 궁성이 함께 축조되고, 나중에 궁성의 북벽을 확장하면서 외성 축조가 뒤따랐을 것으로 추정한다.    동벽의 길이는 3,358.5m, 서벽은 3,406m997년 보고서에는 3,398m], 남벽은 4,586m로 모두 직선이고, 북벽은 철(凸)자형으로 4,946m로 외성의 총 둘레는 16,296.5m이다. 성벽은 안팎 양쪽으로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리고 안쪽에 흙을 채워 넣은 구조이다. 당시의 규모는 높이 6m, 하부 너비 16~18m, 상부 너비 6~7m로 추정된다. 외성 밖에는 해자가 있었는데 동벽과 북벽 밖에 흔적이 잘 남아 있다. 외성에는 모두 11개의 성문이 있는데, 동·서벽에 각각 2개, 남벽에 3개, 북벽에 4개가 있었다[일부에서는 북벽의 문이 3개라고 해 놓았다.]. ☆ 1997년 보고서에 따르면 서벽의 길이는 3,398m로 총 둘레 길이를 16,288.5m라고 하였다.   성은 주작대로를 기준으로 동반성(東半城)과 서반성(西半城)으로 나뉘며, 길이 바둑판모양으로 나있어 성 전체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고 있다. 각 구역 안에는 주민들이 살던 집과 절·시장 등이 있던 이방(里坊)이 있다. 서반성 이방은 41개로 큰 것이 9개, 작은 것이 32개이다. 동반성에도 자세하지는 않지만 40여 개의 이방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궁성은 장방형으로 외성의 북쪽 가운데에 있으며 전체 둘레 3,986m[동벽의 길이는 900m, 남벽은 1,050m, 서벽은 940m, 북벽은 1,096m]의 석벽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데 그 높이는 3~4m이다. 궁성 벽의 네 모퉁이에는 각루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성 밖으로 해자가 있던 흔적도 있다. 궁성의 정문은 오봉루(五鳳樓)라 불리며 5m 정도의 축대와 그 위의 주춧돌이 잘 남아 있다. 제1~5 궁전지를 『영안현지(寧安縣誌)』에서는 오중전(五重殿)이라고 하였으며 이들은 모두 회랑(廻廊)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제2 궁전지의 옆에는 ‘팔보유리정(八寶琉璃井)’이라 불리는 우물이 남아 있으며 동쪽 구역에는 ‘어화원(御花園)’이라 불리는 궁궐 정원터가 있었다.    황성은 궁성 남쪽에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동서가 긴 장방형으로 성벽의 축조 방식은 궁성과 같다. 동벽의 길이가 447m, 남벽은 1,045m, 서벽 454m, 북벽은 1,050m로 전체 길이가 2,996m이다. 이 곳에는 동문·서문·남문의 3개문이 있고, 동쪽 구역·서쪽 구역·중심 구역의 3개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이 곳에서 10개의 관청지(官廳址)가 나타나 그 일부가 발굴되었다. 여기에 3성 6부(三省六部)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 입장료: 30원(만약 입장료를 내라고 하면 북쪽으로 더 걸어서 올라가라. 그쪽에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된다.) ※ 비고: 동경성 3번 버스의 종점은 발해시대의 석등이 있는 흥륭사이니 먼저 이곳을 보고 거기로 넘어가는 것이 편할 것이다.

Sightseeing

Chengqu Subdistrict, Heilongjiang, PRC
Karuna photo
time : Jul 18, 2019 8:10 AM
duration : 4h 25m 15s
distance : 49.9 km
total_ascent : 208 m
highest_point : 361 m
avg_speed : 18.1 km/h
user_id : Karuna
user_firstname : KH
user_lastname : Suk
오늘의 여정; 발해박물관 발해상경성 용천부 흥륭사 길림시 숙박 상경 용천부(上京龙泉府)로 추정되는 유적은 흑룡강성(黑龙江省) 영안시(宁安市)의 발해진(渤海镇) 경내에 있으며 경박호(镜泊湖) 동북쪽의 목단강(牡丹江) 부근에 있는데 외성의 둘레 길이는 16.3km에 총 면적은 16.4㎢이다. 상경 용천부는 발해(渤海)의 수도로 가장 오랫동안 사용된 곳이었는데 《요사(辽史)》에서는 홀한성(忽汗城)이라고 하였다. 발해의 3대 왕인 문왕(文王)이 756년 초(혹은 755년)에 두번째 수도였던 중경 현덕부(中京顯德府)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다. 그리고 이후 785년에서 794년까지 약 10년 동안 동경 용원부(東京龍原府)를 수도로 했다가 5대 왕인 성왕(成王)이 다시 상경 용천부로 수도를 옮긴 후로 발해가 망한 927년까지 1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발해의 수도였다. ☆ 발해의 첫번째 수도는 698년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 근거지로 한 동모산(東牟山)이다. 이후 742년에 문왕이 중경현덕부로 수도를 옮겼다. ☆ 발해는 지방 행정구역을 5경(京) 15부(府) 62주(州)로 편제했는데 상경은 5경의 하나로 나머지는 중경 현덕부, 동경 용원부, 서경 압록부(西京鴨綠府), 남경 남해부(南京南海府)이다.    상경 용천부로 추정되는 곳의 왕성 위치와 배치 등은 당나라 장안성을 거의 그대로 본따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나라에 의해 망한 뒤 유민들이 강제 이주 당한 뒤에 폐허로 바뀌었다가 청나라 초기의 사적들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는데 《동경기(东京记)》에서는 이곳에 대해 "영공대의 서남쪽 60리를 사령이라 하고 사령의 동쪽 10여리에 고성이 있어 이곳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동경이라고 하는데 대개 금나라의 옛 도읍이라고 한다[宁公台西南六十里曰沙岭, 岭东十余里, 有古城焉, 土人相传曰东京, 盖金祖故都是也.]."라고 하였으며 《영고탑기략(宁古塔纪略)》에서도 "100리를 가면 사령에 이르는데 첫 번째 역참에 금나라의 상경성이 있다. 마이하에 근접해 있는데 궁전터가 아직도 있다[一百里至沙岭, 第一站, 有金之上京城. 临马耳河, 宫殿基址尚存.]."라고 하여 이를 금나라의 상경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동경이라는 이름 때문에 동경성(东京城)이나 동경둔(东京屯)이라 불리게 되었다.     1909년에 일본의 백조고길(白鳥庫吉)이 이 성을 답사한 적이 있으며 1931년에는 러시아의 포노소프(B.B. Ponosov)가 조사하기도 했었다. 최초의 고고학 발굴 조사는 1933년과 34년의 이년 동안 일본의 동아고고학회(東亞考古學會)가 진행한 것으로 이를 통해 여기가 발해의 상경 용천부로 비정되었다. 1961년에는 중국 국무원에서 이 곳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로 지정하였다. 1963년과 64년에는 북한과 중국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대대적인 발굴 조사를 하였고, 이후로도 수 차례의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멀리 경박호(鏡泊湖)로부터 펼쳐진 현무암 충적평야의 동경성 분지에 철저한 계획 아래 만든 이 곳은 외성(外城), 궁성(宮城), 황성(皇城)으로 이루어졌으며 3겹의 성벽은 서로 일정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성문도 일직선으로 연결된다. 다만 성벽의 축조시점은 조금 달라서 처음에 황성과 궁성이 함께 축조되고, 나중에 궁성의 북벽을 확장하면서 외성 축조가 뒤따랐을 것으로 추정한다.    동벽의 길이는 3,358.5m, 서벽은 3,406m997년 보고서에는 3,398m], 남벽은 4,586m로 모두 직선이고, 북벽은 철(凸)자형으로 4,946m로 외성의 총 둘레는 16,296.5m이다. 성벽은 안팎 양쪽으로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리고 안쪽에 흙을 채워 넣은 구조이다. 당시의 규모는 높이 6m, 하부 너비 16~18m, 상부 너비 6~7m로 추정된다. 외성 밖에는 해자가 있었는데 동벽과 북벽 밖에 흔적이 잘 남아 있다. 외성에는 모두 11개의 성문이 있는데, 동·서벽에 각각 2개, 남벽에 3개, 북벽에 4개가 있었다[일부에서는 북벽의 문이 3개라고 해 놓았다.]. ☆ 1997년 보고서에 따르면 서벽의 길이는 3,398m로 총 둘레 길이를 16,288.5m라고 하였다.   성은 주작대로를 기준으로 동반성(東半城)과 서반성(西半城)으로 나뉘며, 길이 바둑판모양으로 나있어 성 전체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고 있다. 각 구역 안에는 주민들이 살던 집과 절·시장 등이 있던 이방(里坊)이 있다. 서반성 이방은 41개로 큰 것이 9개, 작은 것이 32개이다. 동반성에도 자세하지는 않지만 40여 개의 이방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궁성은 장방형으로 외성의 북쪽 가운데에 있으며 전체 둘레 3,986m[동벽의 길이는 900m, 남벽은 1,050m, 서벽은 940m, 북벽은 1,096m]의 석벽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데 그 높이는 3~4m이다. 궁성 벽의 네 모퉁이에는 각루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성 밖으로 해자가 있던 흔적도 있다. 궁성의 정문은 오봉루(五鳳樓)라 불리며 5m 정도의 축대와 그 위의 주춧돌이 잘 남아 있다. 제1~5 궁전지를 『영안현지(寧安縣誌)』에서는 오중전(五重殿)이라고 하였으며 이들은 모두 회랑(廻廊)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제2 궁전지의 옆에는 ‘팔보유리정(八寶琉璃井)’이라 불리는 우물이 남아 있으며 동쪽 구역에는 ‘어화원(御花園)’이라 불리는 궁궐 정원터가 있었다.    황성은 궁성 남쪽에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동서가 긴 장방형으로 성벽의 축조 방식은 궁성과 같다. 동벽의 길이가 447m, 남벽은 1,045m, 서벽 454m, 북벽은 1,050m로 전체 길이가 2,996m이다. 이 곳에는 동문·서문·남문의 3개문이 있고, 동쪽 구역·서쪽 구역·중심 구역의 3개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이 곳에서 10개의 관청지(官廳址)가 나타나 그 일부가 발굴되었다. 여기에 3성 6부(三省六部)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 입장료: 30원(만약 입장료를 내라고 하면 북쪽으로 더 걸어서 올라가라. 그쪽에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된다.) ※ 비고: 동경성 3번 버스의 종점은 발해시대의 석등이 있는 흥륭사이니 먼저 이곳을 보고 거기로 넘어가는 것이 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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