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족 역사기행-1.1 안중근의사 기념관, 이란현 오국성

금일의 여정: 하얼빈역 안중근의사 기념관, 후란강(해서여진의 기반이었던), 청태조 누르하치의 6대조 몽케테무르가 살았던 의란현(依兰县)에 있는 金代五国头城遗址(5개 부락국가가 회맹했던 곳) 만주족 역사를 금나라 상경 박물관에서 시작하려고 했으나 올해는 내부 수리중이라 다음 기회로 아껴두고, 후란강과 송화강이 만나는 이란 현으로...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만주족의 역사. 통일하기 전에는 건주여진 해서여진 동해여진(야인여진, 생여진)으로 만주 넓은 땅에 산재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해서여진은 후란하(呼兰河) 일대에서 초기국가 형태를 갖췄답니다 이란현(의란현, 중국어: 依兰县, 병음: Yīlán Xiàn)은 중화인민공화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 시의 행정구역이다. 넓이는 4672km2이고, 인구는 2007년기준으로 400,000명이다. 이란은 무단 강이 쑹화 강과 합쳐지는 지점에 위치한다. 명나라 때 이란은 공식적으로 싼싱(三姓, 이란할라/만주어)으로 알려져있었고 후르카 강(무단 강) 계곡의 건주 여진의 두 개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또다른 중심지는 후르카 강의 상류의 닝안이었다). 마을은 청나라 기간 동안 중요하게 여겨졌고 1692년 부도통(副都统)의 주둔지가 되었다. 지린의 총독의 예하에 속했다. 산싱 부도통은 지린 성 북동부를 관할하였다(이 때의 지린 성은 지금의 지린 성보다 커서 쑹화 강과 아무르 강을 따라 태평양까지 뻗어있었다). 합이빈시(哈尔滨市)에 속하는 의란현에는 정강의 변[靖康之變, 1126년]으로 금나라에 잡혀온 송나라의 휘종과 흠종이 끌려간 곳이 바로 이곳에 있는 오국성이다. ☆ 의란현의 서쪽으로는 목단강(牡丹江)이 흐르며 북쪽에는 송화강(松花江)이 흘러가며 동쪽으로는 왜긍하(倭肯河)가 흐른다. 랍합부산(拉哈府山, 속칭으로 서산(西山)이라고 부른다)과 왜긍합달산(倭肯哈达山, 속칭으로 동산(东山)이라고 부른다)이 동서로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송화강의 출입문[松花江门户]"이라고 불리어 왔다.   오국성 유지(五国城遗址)는 또한 좌정관천 유지(坐井观天遗址)라고도 불린다. 의란현(依兰县)의 서북부에 있으며 점지 면적은 3.8만㎡로 성급문물보호단위(省级文物保护单位)로 지정되어 있다. 오국성 터는 장방형으로 둘레 길이가 2,210m으로 성벽은 흙을 틀에 넣고 다져서 만들었는데 남은 성벽으로 높은 것은 3m가 된다.  ☆ 오국성의 위치에 대해 조선시대 문인들 대다수는 함경도 회령이라 생각했으며 청나라 시대의 학자들은 길림성의 부여라고 보기도 하는 등 다른 견해들도 있다.   오국성은 오국부(五國部)가 있던 성의 하나이다. 《요사(辽史)》 권33 《지리지(地理志)》에 보면 오국부(五國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오국부: 부아리국(剖阿里國), 분노리국(盆奴里國), 오리미국(奧里米國), 월리독국(越里篤國), 월리길국(越里吉國) 등이 성종 때에 귀부하자, 본토에 살며 동북쪽 변경을 진정시키도록 하고 황룡부도부서사(黃龍府都部署司)에 소속시켰다. 중희(重熙) 6년(1037)에 월리길국의 사람인 상해(尚海) 등이 추수(酋帥) 혼폐(渾敝)가 욕심이 많고 못된 짓을 한다고 하소연하므로, 오국의 추수를 파하고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이 가운데 가장 서쪽에 있던 월리길국의 사람들이 살던 성이 오국성이었으며 오국부가 회맹을 하던 성이었기 때문에 오국두성(五國頭城)이라고도 불렀다.    금나라 천회 5년(1127)에 금나라 군이 북송(北宋)의 수도였던 변경(汴京, 지금의 개봉시(开封市) 일대)을 공격해 점거하고는 휘종(徽宗)과 흠종(欽宗) 두 명의 황제와 이들을 따르는 1,000여 명의 사람들을 잡아서 북쪽으로 보낸다. 그리고 다음해 7월에 연산부(燕山府)에 도착했고, 다시 중경(中京)에 이르렀다가 상경(上京, 지금의 합이빈시 아성구 금상경 유적지)으로 끌고왔고, 금나라 태종(太宗)은 휘종을 혼덕공(昏德公), 흠종을 중혼후(重昏侯)로 삼았다. 그리고 이해 12월에 두 명의 황제를 상경에서 한주(韩州, 지금의 요녕성 창도현(昌图县) 팔면성(八面城) 일대)로 보내버린다. 한주에 있을 때 송휘종은 시를 지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는데 아래와 같다.  裁剪冰绡, 轻叠数重, 淡著燕脂匀注.  新样靓妆, 艳溢香融, 羞杀蕊珠宫女.  易得凋零, 更多少·无情风雨.  愁苦! 问院落凄凉, 几番春暮? 凭寄离恨重重, 者双燕何曾, 会人言语.  天遥地远, 万水千山, 知他故宫何处.  怎不思量, 除梦里·有时曾去.  无据, 和梦也, 新来不做. 희고도 흰 비단 마름질하여 몇겹으로 고이 포개서는 연한 연지로 고르게 칠했네. 최신 유행하는 아름다운 단장, 그 아름답고 고운 색깔에 사방으로 퍼지는 맑은 향기가 물드니 하늘나라 예주궁의 선녀들이 부끄러워 몸 둘바를 모르네. 붉은 것은 쉬이 쇠미해지는데 하물며 허다하게 정없는 비바람 맞은 다음에랴. 괴롭구나!처량한 뜰에게 묻노니, 봄이 져무는 것을 몇번 더 봐야 하는가? 누가 겹겹히 쌓인 이별의 아픔을 전해줄까, 저 한쌍의 제비가 언제 사람에게 대답한 적이 있던가. 하늘은 아득하고 땅은 멀며 만 개의 물과 천개의 산을 지나야 하니 옛 궁궐이 어디 있는지 누가 알까. 어찌 그립지 않을까만은 꿈 속을 제외하면 어느 때에 갈 수 있으랴. 기댈 곳 없으니, 화목한 꿈조차 다시 와 꿀 수 없구나. 《연산정(燕山亭)·북으로 가는 길에 살구꽃을 보다[北行见杏花]》 - 송휘종(宋徽宗) 조길(赵佶)   슬픔 속에 살던 그들은 1130년 7월 다시 송화강에서 배를 타고 이동해 46일 후에 오국두성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오국두성으로 옮겨 온 두 황제와 관련해 "우물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다[坐井观天]."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 흔히 '좌정관천'이라는 용어는 옛 사람들이 감금된 참담한 심정을 형용할 때 쓰는 표현으로 여기서 정(井)은 우물이 아니라 사합원 내의 가운데를 가리킨다. 당시 오국두성에 사합원 건물이 있을리는 만무하니 그냥 비참한 심정에서 나온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오국두성의 비참한 생활 속에서 휘종은 다시 시 한편을 지으니 《안아미(眼儿媚)》 라는 시가 그 것이다.  玉京曾忆昔繁华. 万里帝王家. 琼林玉殿, 朝喧弦管, 暮列笙琶. 花城人去今萧索, 春梦绕胡沙. 家山何处, 忍听羌笛, 吹彻梅花. ※ 경림옥전(琼林玉殿)은 채경과 주면 등 6적이 수탈한 재물과 백성들을 쥐어짜 만든 궁전과 원림을 가리킨다. 변경(汴京) 그 옛날의 번화함을 추억해본다. 만리강산이 제왕의 집이었지. 구슬로 된 숲과 옥으로 된 궁전에 아침은 현악기와 관악기 소리로 시끄럽고,저녁은 생황과 비파소리가 줄지었지. 번화한 거리의 사람들 가고 이제는 적막하니 덧없던 꿈은 오랑캐 땅의 모래로 휘 감기네. 고향 산천은 어디인고, 차마 오랑캐의 피리로 뼈에 사무치는 《매화락(梅花落)》을 부는 것을 듣지 못하겠네. 《안아미(眼儿媚)》  - 송휘종(宋徽宗) 조길(赵佶)   오국두성의 비참한 생활은 향락에 있어 저리가라 했던 송휘종에게 크나큰 치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송휘종은 결국 5년이 지난 1135년에 54세의 나이로 오국두성에서 병으로 죽음으로써 비참하고 치욕스러운 삶을 마감한다. 그의 아들인 흠종은 금나라 해릉왕(海陵王) 완안량(完颜亮)이 등극한 후에 상경으로 옮겨와 살게 했고, 1153년에 해릉왕이 연경(燕京)을 중도(中都)로 삼아서 상경에서 천도를 할 때 같이 데리고 간다. 그리고 1157년에 57세의 나이로 연경에서 병으로 죽으면서 그의 삶도 마무리된다.    오국두성 혹은 오국성이 있는 의란현의 겨울은 매우 매서운데 추울 때는 영하 40℃ 이하로 내려간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영하 35℃였는데 삭풍이 부는데 정말 살갗을 에는 듯 했다. 송나라의 수도가 있던 개봉이 겨울에 평균 영하 1℃, 추울 때 영하 5℃ 정도 됨을 감안하면 겨울만 되면 추워 미칠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러니 금나라가 이들을 오국두성으로 보낸 것은 빨리 죽어버리라는 의도로 보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 천재 예술가였으나 정치 망나니였던 송휘종. 혼란한 시대에 하필 황제가 그였으니, 필연된 자신의 비극도 그렇지만 뒤따른 백성들의 어려움은 어떠했겠나.

Sightseeing

Harbin City, Heilongjiang, PRC
Karuna photo
time : Jul 16, 2019 6:03 AM
duration : 10h 54m 4s
distance : 380.9 km
total_ascent : 1922 m
highest_point : 314 m
avg_speed : 43.1 km/h
user_id : Karuna
user_firstname : KH
user_lastname : Suk
금일의 여정: 하얼빈역 안중근의사 기념관, 후란강(해서여진의 기반이었던), 청태조 누르하치의 6대조 몽케테무르가 살았던 의란현(依兰县)에 있는 金代五国头城遗址(5개 부락국가가 회맹했던 곳) 만주족 역사를 금나라 상경 박물관에서 시작하려고 했으나 올해는 내부 수리중이라 다음 기회로 아껴두고, 후란강과 송화강이 만나는 이란 현으로...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만주족의 역사. 통일하기 전에는 건주여진 해서여진 동해여진(야인여진, 생여진)으로 만주 넓은 땅에 산재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해서여진은 후란하(呼兰河) 일대에서 초기국가 형태를 갖췄답니다 이란현(의란현, 중국어: 依兰县, 병음: Yīlán Xiàn)은 중화인민공화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 시의 행정구역이다. 넓이는 4672km2이고, 인구는 2007년기준으로 400,000명이다. 이란은 무단 강이 쑹화 강과 합쳐지는 지점에 위치한다. 명나라 때 이란은 공식적으로 싼싱(三姓, 이란할라/만주어)으로 알려져있었고 후르카 강(무단 강) 계곡의 건주 여진의 두 개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또다른 중심지는 후르카 강의 상류의 닝안이었다). 마을은 청나라 기간 동안 중요하게 여겨졌고 1692년 부도통(副都统)의 주둔지가 되었다. 지린의 총독의 예하에 속했다. 산싱 부도통은 지린 성 북동부를 관할하였다(이 때의 지린 성은 지금의 지린 성보다 커서 쑹화 강과 아무르 강을 따라 태평양까지 뻗어있었다). 합이빈시(哈尔滨市)에 속하는 의란현에는 정강의 변[靖康之變, 1126년]으로 금나라에 잡혀온 송나라의 휘종과 흠종이 끌려간 곳이 바로 이곳에 있는 오국성이다. ☆ 의란현의 서쪽으로는 목단강(牡丹江)이 흐르며 북쪽에는 송화강(松花江)이 흘러가며 동쪽으로는 왜긍하(倭肯河)가 흐른다. 랍합부산(拉哈府山, 속칭으로 서산(西山)이라고 부른다)과 왜긍합달산(倭肯哈达山, 속칭으로 동산(东山)이라고 부른다)이 동서로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송화강의 출입문[松花江门户]"이라고 불리어 왔다.   오국성 유지(五国城遗址)는 또한 좌정관천 유지(坐井观天遗址)라고도 불린다. 의란현(依兰县)의 서북부에 있으며 점지 면적은 3.8만㎡로 성급문물보호단위(省级文物保护单位)로 지정되어 있다. 오국성 터는 장방형으로 둘레 길이가 2,210m으로 성벽은 흙을 틀에 넣고 다져서 만들었는데 남은 성벽으로 높은 것은 3m가 된다.  ☆ 오국성의 위치에 대해 조선시대 문인들 대다수는 함경도 회령이라 생각했으며 청나라 시대의 학자들은 길림성의 부여라고 보기도 하는 등 다른 견해들도 있다.   오국성은 오국부(五國部)가 있던 성의 하나이다. 《요사(辽史)》 권33 《지리지(地理志)》에 보면 오국부(五國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오국부: 부아리국(剖阿里國), 분노리국(盆奴里國), 오리미국(奧里米國), 월리독국(越里篤國), 월리길국(越里吉國) 등이 성종 때에 귀부하자, 본토에 살며 동북쪽 변경을 진정시키도록 하고 황룡부도부서사(黃龍府都部署司)에 소속시켰다. 중희(重熙) 6년(1037)에 월리길국의 사람인 상해(尚海) 등이 추수(酋帥) 혼폐(渾敝)가 욕심이 많고 못된 짓을 한다고 하소연하므로, 오국의 추수를 파하고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이 가운데 가장 서쪽에 있던 월리길국의 사람들이 살던 성이 오국성이었으며 오국부가 회맹을 하던 성이었기 때문에 오국두성(五國頭城)이라고도 불렀다.    금나라 천회 5년(1127)에 금나라 군이 북송(北宋)의 수도였던 변경(汴京, 지금의 개봉시(开封市) 일대)을 공격해 점거하고는 휘종(徽宗)과 흠종(欽宗) 두 명의 황제와 이들을 따르는 1,000여 명의 사람들을 잡아서 북쪽으로 보낸다. 그리고 다음해 7월에 연산부(燕山府)에 도착했고, 다시 중경(中京)에 이르렀다가 상경(上京, 지금의 합이빈시 아성구 금상경 유적지)으로 끌고왔고, 금나라 태종(太宗)은 휘종을 혼덕공(昏德公), 흠종을 중혼후(重昏侯)로 삼았다. 그리고 이해 12월에 두 명의 황제를 상경에서 한주(韩州, 지금의 요녕성 창도현(昌图县) 팔면성(八面城) 일대)로 보내버린다. 한주에 있을 때 송휘종은 시를 지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는데 아래와 같다.  裁剪冰绡, 轻叠数重, 淡著燕脂匀注.  新样靓妆, 艳溢香融, 羞杀蕊珠宫女.  易得凋零, 更多少·无情风雨.  愁苦! 问院落凄凉, 几番春暮? 凭寄离恨重重, 者双燕何曾, 会人言语.  天遥地远, 万水千山, 知他故宫何处.  怎不思量, 除梦里·有时曾去.  无据, 和梦也, 新来不做. 희고도 흰 비단 마름질하여 몇겹으로 고이 포개서는 연한 연지로 고르게 칠했네. 최신 유행하는 아름다운 단장, 그 아름답고 고운 색깔에 사방으로 퍼지는 맑은 향기가 물드니 하늘나라 예주궁의 선녀들이 부끄러워 몸 둘바를 모르네. 붉은 것은 쉬이 쇠미해지는데 하물며 허다하게 정없는 비바람 맞은 다음에랴. 괴롭구나!처량한 뜰에게 묻노니, 봄이 져무는 것을 몇번 더 봐야 하는가? 누가 겹겹히 쌓인 이별의 아픔을 전해줄까, 저 한쌍의 제비가 언제 사람에게 대답한 적이 있던가. 하늘은 아득하고 땅은 멀며 만 개의 물과 천개의 산을 지나야 하니 옛 궁궐이 어디 있는지 누가 알까. 어찌 그립지 않을까만은 꿈 속을 제외하면 어느 때에 갈 수 있으랴. 기댈 곳 없으니, 화목한 꿈조차 다시 와 꿀 수 없구나. 《연산정(燕山亭)·북으로 가는 길에 살구꽃을 보다[北行见杏花]》 - 송휘종(宋徽宗) 조길(赵佶)   슬픔 속에 살던 그들은 1130년 7월 다시 송화강에서 배를 타고 이동해 46일 후에 오국두성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오국두성으로 옮겨 온 두 황제와 관련해 "우물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다[坐井观天]."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 흔히 '좌정관천'이라는 용어는 옛 사람들이 감금된 참담한 심정을 형용할 때 쓰는 표현으로 여기서 정(井)은 우물이 아니라 사합원 내의 가운데를 가리킨다. 당시 오국두성에 사합원 건물이 있을리는 만무하니 그냥 비참한 심정에서 나온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오국두성의 비참한 생활 속에서 휘종은 다시 시 한편을 지으니 《안아미(眼儿媚)》 라는 시가 그 것이다.  玉京曾忆昔繁华. 万里帝王家. 琼林玉殿, 朝喧弦管, 暮列笙琶. 花城人去今萧索, 春梦绕胡沙. 家山何处, 忍听羌笛, 吹彻梅花. ※ 경림옥전(琼林玉殿)은 채경과 주면 등 6적이 수탈한 재물과 백성들을 쥐어짜 만든 궁전과 원림을 가리킨다. 변경(汴京) 그 옛날의 번화함을 추억해본다. 만리강산이 제왕의 집이었지. 구슬로 된 숲과 옥으로 된 궁전에 아침은 현악기와 관악기 소리로 시끄럽고,저녁은 생황과 비파소리가 줄지었지. 번화한 거리의 사람들 가고 이제는 적막하니 덧없던 꿈은 오랑캐 땅의 모래로 휘 감기네. 고향 산천은 어디인고, 차마 오랑캐의 피리로 뼈에 사무치는 《매화락(梅花落)》을 부는 것을 듣지 못하겠네. 《안아미(眼儿媚)》  - 송휘종(宋徽宗) 조길(赵佶)   오국두성의 비참한 생활은 향락에 있어 저리가라 했던 송휘종에게 크나큰 치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송휘종은 결국 5년이 지난 1135년에 54세의 나이로 오국두성에서 병으로 죽음으로써 비참하고 치욕스러운 삶을 마감한다. 그의 아들인 흠종은 금나라 해릉왕(海陵王) 완안량(完颜亮)이 등극한 후에 상경으로 옮겨와 살게 했고, 1153년에 해릉왕이 연경(燕京)을 중도(中都)로 삼아서 상경에서 천도를 할 때 같이 데리고 간다. 그리고 1157년에 57세의 나이로 연경에서 병으로 죽으면서 그의 삶도 마무리된다.    오국두성 혹은 오국성이 있는 의란현의 겨울은 매우 매서운데 추울 때는 영하 40℃ 이하로 내려간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영하 35℃였는데 삭풍이 부는데 정말 살갗을 에는 듯 했다. 송나라의 수도가 있던 개봉이 겨울에 평균 영하 1℃, 추울 때 영하 5℃ 정도 됨을 감안하면 겨울만 되면 추워 미칠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러니 금나라가 이들을 오국두성으로 보낸 것은 빨리 죽어버리라는 의도로 보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 천재 예술가였으나 정치 망나니였던 송휘종. 혼란한 시대에 하필 황제가 그였으니, 필연된 자신의 비극도 그렇지만 뒤따른 백성들의 어려움은 어떠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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