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seong-si, Gyeonggi-do, South Korea
time : Nov 29, 2017 1:18 PM
duration : 3h 6m 19s
distance : 41.6 km
total_ascent : 292 m
highest_point : 176 m
avg_speed : 14.4 km/h
user_id : ansuk6531
user_firstname : 숙
user_lastname : 안
광교노인복지관 역사탐방반 8명이 지난 29일(수) 오후 12시 30분부터 5시 까지 화성 당성과 남양풍화당을 탐방했다.
역사탐당반은 20여명으로 매주 수요일 오후 1시에 김희태(국내여행안내사, '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 저자) 강사를 모시고 수업을 받는다.
이번 탐방은 지난 강의에서 학습한 내용을 토대로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끼는 시간이 됐다.
사적 제217호인 화성시 당성은 고대 실크로드의 관문이자 해상교통로의 중심지이다.
당성(당항성)은 정상부에 퇴뫼식으로 축조된 1차 성벽, 1차 성벽의 중간부를 관통해 동남 방향의 산복부를 감싸고 있는 포곡식의 2차 성벽, 1차 성벽의 남쪽에 위치한 외성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날 일행은 1차 성벽을 탐방했다.
당시 화성시의 대표적인 장소가 당황성인데,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지금의 화성시의 전신이 바로 남양도호부이고, 남양부 이전엔 당성군으로 불렸다.
고려 때 남양부로 바뀌기 이전 화성은 당항성임을 알수있다.
그 이후 남양부로 바뀐 뒤에는 지금의 남양읍이 중심지인데, 남양도호부에 있었던 관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만 남양 풍화당과 연못 등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중국과 직접적인 해상교역루트인 남양만 일대를 차지함으로써 당나라 연합군이 당시 고구려와 대치상황이었던 한강유역을 거치지 않고 안전하게 서해안에 상륙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따라서 당성은 신라가 중국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통하여 통일국가의 기반을 완성한 중요 거점 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